매일신문

[출향 경제인을 만나다] (1) 이상춘 SCL 회장

45년 경영 노하우 "호황에도 불황에도 늘 대비해야…위기는 곧 기회"

이상춘 SCL 회장은
이상춘 SCL 회장은 "기업에는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찾아온다. 위기는 또 기회이기도 하다"라며 위기 타개를 위한 유비무환과 의지를 강조했다.. 이무성 객원기자

국내는 물론 중국과 미국, 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한국 기업인들은 퍼펙트 스톰과 싸우며 국부(國富)를 일구고 있다. 그 최전선에 대구경북 출신 기업가들이 있다. 이들의 창업 정신과 도전의 길을 따라가 본다.

코로나19 펜데믹 장기화부터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르기까지 악재가 겹겹으로 덮치며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오늘날 가장 필요한 고사성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지난 13일 만난 이상춘(67) SCL 대표이사·회장은 "호황에도 불황에도 위기의식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고 유비무환을 강조했다. 경북 김천 출신인 이 회장은 대신스프링스사(社)를 뿌리로 한 SCL을 경영한 지난 45년 동안 오일쇼크,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숱한 대내외적 난관을 이겨낸 경영인이다.

그는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며 불굴의 의지와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연이어 들어오고 있다. 기업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외환위기는 아시아에 국한된 위험이었다. 국내가 어렵긴 했지만, 열심히 하면 해외 판로를 찾아 회복 가능성을 내다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전 세계가 모두 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 물가, 금리 상승부터 원자재 가격, 달러화 상승 등 작금의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버텨낼 기업이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특히 직원 채용이 상당히 어렵다.

실업률이 높다고 하는데, 대기업만 그렇다. 중견·중소기업에서는 말도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납품할 때 필요한 화물차 하나 구하기 쉽지 않다. 제조업과 같은 3D 업종에서는 외국인력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앞으로 제조업이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여 현장에서 많이들 걱정하고 계신다.

이상춘 - (주)에스씨엘 대표. 이무성 객원기자
이상춘 - (주)에스씨엘 대표. 이무성 객원기자

-SCL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고 있나?

▶한마디로 유비무환이다. 45년간 기업을 경영하며 느낀 것은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찾아온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은 농사와 같다. 풍년 때 흉년을 대비해야 한다. 기업이 잘 나갈 때 다가올 위기를 대비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희는 호황에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창업 초기 오일쇼크로 인해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1992년에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정도의 부도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위기는 대비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호황에도 불황에도 언제나 위기의식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부도 위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하다.

▶기업 부도는 개인 파산과 다르다. 개인 파산은 회생하면 되지만, 기업은 부도가 나면 일이 끊기고 채무도 이행해야 한다. 돈을 벌지 못하는데 채무를 어떻게 해결하겠나.

제가 부도위기에 몰렸을 때는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를 잘 알던 은행 지점장이 신용대출로 막아줬다. 옷을 벗을 일이었지.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나님의 은혜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경기도 부천시 소재 ㈜에스씨엘(SCL) 본사 전시관에는 당시 부도난 수표를 버리지 않고 모아 둔 액자가 있다. 기억하기도 싫을 텐데 249,681,894원(33매) 숫자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고 그 위에 '居安思危 有備無患(거안사위 유비무환)'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위험과 어려움이 닥칠 것을 생각해 미리 준비하자는 의미다.

오늘날 SCL을 만든 근본으로 읽힌다. 오늘의 이 회장을 만든 또 하나의 토대는 가족이다.

그는 "훌륭하신 부모님을 만났고, 착한 아내와 살고 있어 행복하다"고 토로했다. 이런 뿌리는 자연스럽게 두 아들로 이어졌다. 부모님은 그에게 가족을 위한 희생 같은 가르침을 주었고, 부인 이금순 여사는 불평 한마디 없이 어렵게 일군 부를 기부하는 데 동반자가 됐다.

-SCL은 국내 자동차 패드 스프링 부품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절대 강자인데.

▶과거에는 모두 일본에서 수입하던 제품들이다. 일본에서 기계를 들여오고, 국산화에 성공했다. 많은 곳들이 제작하지만, 균등한 제품을 만들어야 고객들이 다시 찾는다.

그래서 저희는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며 품질을 높이고 있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가성비가 중요하다. 가격적으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품질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때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그 비결은?

▶선진국과 교류하고, 기술 자문을 구하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는 부분은 해외에 직접 가서 배워오기도 하고, 국내로 들여와 나름의 연구를 진행한다.

업력 70년의 일본 오치아이와 30년 넘게 거래하며 기술적으로 뒤처지지 않으려 애쓴다.
-국내 곳곳과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다. 세계경영 전략은?

▶중국 북경, 천진, 중경 등 세 곳에 진출해 있다. 18년 정도 됐나. 저희가 중국으로 나갈 당시만 해도, 가면 다 망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저희 역시 매우 긴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운영하고 있다. 중국 진출 기업 중에서는 비교적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물론, 노사 문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 기업하는 것에 비해 불리한 점도 존재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기업을 보호해야 하다 보니, 지원 자체가 다르다. 규제 부분에서도 우리에게는 더 엄격하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힘들었다. 한국에서 못 들어가고, 중국에 있는 주재원들도 나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폐쇄정책을 펴는 바람에 때때로 공장 가동이 멈추기도 한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지만 잘 극복하고 있다.

이상춘 - (주)에스씨엘 대표. 이무성 객원기자
이상춘 - (주)에스씨엘 대표. 이무성 객원기자

-기업이 신나게 일하도록 해야 하는 데 현장의 불만이 큰 듯하다.

▶특히 제조업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악조건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더 잘 살아가려면 제조업이 뿌리를 내려야 된다. 그런데 자꾸 기업하기 어렵게 만든다. 자살골을 넣는 것과 같다.

기업이 없는데 고용이 어떻게 이뤄지고, 세금은 누가 충당하겠나. 정책적으로 기업이 보다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해외 기업도 국내에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은 세계가 경제 전쟁이다. 우리나라에 삼성이나 현대 같은 초일류기업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꾸 자살골을 넣는 정책만 시행해서 되겠나. 선진국일수록 세율을 낮춰 기업 환경이 더 활성화되게 해야 한다.

세율이 낮아지면 세수를 걱정하게 되지만, 기업은 많아지고 고용이 늘어 선순환 구조가 된다. 근로자 복지 향상을 위해 주52시간제도 같은 정책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시기에 맞게 보다 탄력적으로 적용되길 바란다.

-대구경북인, 특히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 중인 젊은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신다면?

▶무엇을 하든 목적지를 분명히 정해야 된다. 특히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펼친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면 왜 벌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선하게 써야 한다는 의미다. 또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기 바란다. 밥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좋을 정도의 일이라면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다. 때로 힘들 수 있고, 후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각각의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이 피어나는 시기 또한 모두 다르다. 어떤 꽃은 봄에 피고, 어떤 꽃은 늦가을에 핀다.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자신의 목적지가 분명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꽃은 반드시 핀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이상춘 회장과 SCL은?

1956년 경북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달랑 500원을 손에 쥐고 서울로 갔다. 어린 동생들을 중학교라도 보내기 위해서였다. 남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을 때 스프링 공장에서 먹고자며 일을 배웠고, 약관의 나이에 자동차 부품회사인 SCL을 창업했다.

회사명이 이상춘 회장의 이름 약자인 데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엿보게 된다.

형설지공의 주인공이다. 주경야독으로 숭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명예박사를 취득했다. 또 김천대학교는 명예박사 1호를 헌정한다. 김천향우회 회장을 맡을 만큼 고향 사랑이 남다르다.

나눔과 베풂의 실천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찌감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고, 평생 모은 사재 105억 원을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

사단법인 우림일만사랑을 만들어 소외계층과 취약계층을 돕고 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성경 말씀을 강조한다. 봉사에 동참하는 이들은 이 회장에게 "오히려 제가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SCL은 경기 안산과 화성, 충남 당진 등 3곳에서 국내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중국에도 법인을 설립해 현지 생산 및 판매 체계를 구축했다.

중국 현지 직원만 약 600명에 달한다. 비엠더블유, 테슬라, 포드 등에 제품을 납품한다.

전 세계로 공급망을 확대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동탑산업훈장 ▷대통령 표창 ▷조사모범납세자 ▷한국의 기업가정신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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