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최경규

한숨 쉬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후배가 있다. 그는 한숨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간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하루를 살아간다. 가끔 볼 때마다 그의 고민은 줄어들지 않고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 그에게 다른 어떤 말도 하기 어렵다. 오죽했으면 저렇겠는가, 한숨이라도 쉬어야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말로 그를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지켜만 보는 입장도 마냥 편하지는 않다.

중국 '묘협' 스님의 법문인 보왕삼매론에 보면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고, 근심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했다. 무엇을 바라는 건,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기준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든 현상은 풍족하기도 하고, 부족하기도 하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만족보다는 결핍에 익숙해지며 내일만을 기약하며 오늘을 희생하는 듯하다. 그날의 한숨을 기억하며 비 오는 가로등 불빛 벤치에 앉아 그에게 하고픈 말을 적어본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마냥 늙지 않고 살 것 같지만, 팽팽했던 얼굴에 어느새 주름이 지고, 귀엽기만 한 아이들도 자기 갈 길을 찾아 하나둘 떠나간다. 속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보아도 바뀌는 것은 크게 없다. 영원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착각, 왜 나만 힘드냐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라.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너무 후회하지 마라, 지금까지 잘못 살았던 것이 아니다. 너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다만 그때의 인연이 그것뿐이었다. 그러니 더 자신을 욕할 필요가 없다. 삶의 지혜가 부족했다고 지나간 시간에 후회가 느껴진다면 그동안 세상 물정 모르고 편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해라. 지금부터라도 가슴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서 배우면 된다.

◆힘들수록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바라보아야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세상에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초조하게 생각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계절의 흐름도 모르고, 맛난 것을 먹어도 맛이 없다. 힘들수록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바라보아야 삶의 의문도 풀리는 법이다. 때로는 인생의 끝을 보고 역산하여 살아보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가장 선명하게 대답할 그 무엇이 있다면 이미 당신은 삶의 목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중요한 목적을 요원한 목표로만 두고 정작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삶. 그 이유가 자식에게 있다면 정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상담을 부탁받고 고민을 들어보면 많은 사람이 "때를 놓쳤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말할 때,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며 애써 못 들은 척 넘어가기도 했고,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말할 때,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로 우선순위를 미루어 온 날들, 후일 돌아가시고 난 후, 가슴 치며 때늦은 후회에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만 허락되는 '후회'라는 것을 한다. 동물이 반성이나 후회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고, 내일을 손바닥 보듯 보는 신에게 후회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인간이기에 하는 생각의 소유다. 그러므로 오늘을 후회하고 내일을 더 잘 살려고 결심하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무엇이 그리 불만인가,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 교과서와 같이 일목요연하고 조화로울 수 없다. 심지어 결혼 생활 30년이 지난 부부도 소통 문제로 상담을 오는데, 몇 달, 몇 년을 만난 남에게 나의 색을 입히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큰 욕심이며 불가능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내 마음의 프레임은 어릴 적 미술 시간에 만들었던 찰흙과 같이 부드러워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에 새들도 들어오고 나무도 자랄 수 있다. 비바람을 막는다는 이유로 철옹성과 같은 철재와 콘크리트로 마음 프레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유연하지 못한 프레임은 단절과 불통을 만들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더라도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향수나 샴푸로 자신을 표현할 것이 아니라, 어두운 밤 나누는 담소, 보이지 않는 당신의 행동에서 향기가 묻어나야 한다. 타인의 칭찬 한마디에 웃고, 비난 한마디에 화를 그리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혼자 있더라도 양초와 같은 은은한 불빛을 얼굴에 품은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법정 스님의 말씀 중, 정말 내가 부끄러운 것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어도 그 단순함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앞에 섰을 때, 그때 나 자신이 몹시 초라하여 가난하게 되돌아본다고 했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정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을 부끄러운 줄 알고, 삶을 당당하게 사는 것을 아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삶을 거시적으로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호연지기라 했듯이 산에 올라보면 새로 지은 고층 건물도 작게 보이듯이 우리의 마음을 키워야 한다. 비행기에 오를 때면 세상 모든 것들이 점처럼 보인다. 그 보이지도 않는 점들에 우리는 마음을 빼앗기고 마음을 어지럽힌다.

법정스님의 말처럼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려는 마음, 그리고 내가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 없음에 방점을 둘 것이 아니라, 당당하지 못함에 자신을 꾸짖고 반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마가 조금씩 물러가고 있다. 처마 밑 어느 선술집에서 한숨을 안주 삼아 검은 밤을 지새울 후배를 생각해본다. 그의 내일이 오늘보다는 더 밝아지길 그리고 편안해지길 바라며 미처 전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글에 녹여 태워본다.

최경규

최경규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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