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구미시에 희소식이 있었다. 반도체 기판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 LG이노텍과 1조4천억 원대의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다.
구미산단에 본사를 두고 있는 SK실트론도 설비 증설 작업이 한창이다. 구미국가산업단지 제3단지에 1조495억 원을 투자해 반도체 웨이퍼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으로, 추가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필자가 취임식 직후 SK실트론 구미공장으로 달려가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현안 사항을 청취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반도체용 쿼츠를 생산하는 원익큐엔씨도 구미 하이테크밸리에 800억 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수요에 대응하고 있으며, 국내 펩리스 대표 기업인 LX세미콘은 매그나칩 반도체 인수를 추진하고 있어 차량용 전력 반도체와 관련한 추가 투자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구미시장으로서 기업들의 연이은 투자 소식은 두말할 나위 없이 환영할 일이다. 아직은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반도체 투자가 줄을 잇고 있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구미는 그동안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 섬유·전자, 1980년대 컴퓨터·반도체, 1990년대 백색가전·전기전자 등의 제조업으로 대한민국을 수출 강국으로 이끌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IT와 모바일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왔다. 구미의 역사는 우리나라 산업 성장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구미가 최근 너무 어렵다. 과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던 구미도 대기업의 해외 이전과 수도권 집중화라는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한때 367억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하며 국내 최대 내륙 수출 기지로 명성을 날렸던 구미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앞으로 구미의 운명은 반도체에 달려 있다. 현재 구미에는 SK실트론, 매그나칩 반도체, 원익큐엔씨, KEC, LG이노텍, 삼성SDI를 비롯해 123개의 반도체 관련 기업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이끌거나 지원하고 있다.
비수도권인 구미가 이렇게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금, 국가의 반도체 전략은 어떠한가. 지난해 발표한 반도체 특별법은 서쪽의 판교부터 온양, 이천, 청주, 용인을 연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기지, 이른바 'K-반도체 벨트'가 핵심이다. 반도체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구미와 경북은 소외됐다. 이는 수도권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중앙정부가 더욱 기울어지게 만드는 정책으로 분명 역차별이다.
정치 지도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다. 지방과 수도권의 인프라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의 성과를 위해 수도권 규제를 푼다면, 국가균형발전은 더욱 멀어지고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인력 양성도 문제다. 지역의 우수 인력이 수도권 대학과 기업으로 몰려들 테고, 지방에 기업이 없으니 지방에서 육성된 반도체 인력도 수도권으로 몰릴 것이 자명하다. 결국 수도권이다. 비수도권의 희생하에 수도권이 발전하는 이런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 이상 수도권이 비수도권의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구미는 호락호락한 도시가 아니다. 황량한 낙동강 모래밭에 최첨단 전자산업단지를 일궈내고, 대한민국의 수출을 견인하며 낙동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도시가 아니던가. 도약과 성장의 디딤돌은 그냥 찾아오지 않는다.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구미에 반도체 투자가 줄을 잇고 있는 지금, 중앙정부는 하루빨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과 반도체 산업 발전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안으로 제2의 K-반도체 특구를 반드시 구미에 지정해야 한다.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에 구미 반도체 인프라의 승수효과가 더해진다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모멘텀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조화로운 균형발전은 국가 생존을 위해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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