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기간제 사서로 자료실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독서회나 독서토론 같은 활동은 하지 않고 늘 혼자 책을 즐겨왔다. 그날은 바쁜 업무 중 잠시 짬이 나 서랍에서 책을 꺼내든 날이었다.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이미 거의 다 읽은 책을 펼쳐 읽던 찰나, 자료실을 이용하던 한 아주머니가 내게 도서반납 문의를 해왔다. 나는 얼른 책을 덮고 건넨 책을 반납했다. 감사하다는 인사에 웃으며 꾸벅 나도 인사를 하는데 자료실을 나가다 다시 내게로 왔다. "선생님. 읽고 있는 그 책 정말 좋지 않나요?" 돌아온 이유가 당연히 도서관 이용문의 때문이라 생각한 나는 예상과 다른 질문에 "네?"하고 반문했다. "그 책 저도 엄청 좋아하거든요.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받는 기분이에요. 선생님에게도 그 책이 좋은 느낌을 주면 좋겠네요." 내게 웃으며 말한 뒤 다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자료실에 근무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책에 대한 감상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마침 나도 책을 무척 즐겁게 읽고 있던 터라 내게 말을 건 아주머니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비록 내가 당황하는 사이 자료실을 떠나버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책을 읽고 생각과 감상을 공유하는 게 참 좋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키친은 동명의 '키친'과 이어지는 이야기인 '만월', 그리고 '달빛 그림자' 세 개의 작품이 담긴 소설집이다. '키친'의 주인공 미카게는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의 단골 꽃집 아르바이트생인 유이치 함께 살게 된다.
미카게와 유이치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성장해나간다. 부엌을 뜻하는 키친은 미카게가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다. 키친의 첫 문장 또한 부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미카게는 좋아하는 부엌에서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다친 마음을 회복한다.
누구에게나 힘든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이다. 소설 속 미카게에게 그 공간은 부엌이고 내게는 집 앞 공원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편안하게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인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질문에 사무적으로 대답해주기 보다는 도서관에 있는 이 시간이 좋은 기억이기를 바라며 마음을 담아 말하게 된다.
기간제 사서이던 나는 올해 수성문화재단에 합격해 고산도서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처음으로 독서회도 맡아 15명의 회원과 함께 1년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회원 중에는 나처럼 처음 독서회에 참여한 사람도 많았다. 처음 독서회에 참여한 회원이든 이미 여러 차례 독서회에 참여해 본 회원이든 나와의 시간이 좋은 기억이기를, 도서관을 떠올리면 편하고 즐거운 생각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소설 속 미카게의 부엌처럼 삶을 크게 지탱하는 장소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서관이 언제나 오고 싶은 편안한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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