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인의 '그날'의 마지막 구절이다. 한국 사회의 병폐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한국이 이룩한 눈부신 경제 성장 이면에는 엇비슷한 목표를 지니고 살아가는 개인이 있다. 경쟁은 끝이 없고, 범주를 벗어난 '아웃사이더'는 철저히 배제된다. 모두가 비슷비슷한 불행과 우울을 안고 사는 지금의 한국. 때로는 숨을 돌리고 한 발짝 떨어져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11년 동안 서울에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온 영국인 라파엘 라시드가 한국 사회의 병폐를 분석한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을 출간했다. 책은 오랜 한국살이를 한 외국인의 시점을 빌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제3자의 시점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저자가 바라보는 한국은 '정상성 중독'의 나라다. 개인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이란 범주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춰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에는 어느 정도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제약의 종류가 많을수록 또 그 강도가 클수록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의 결혼, 직장 문화 등 관습부터 행복, 흑백 논리에 이르는 가치관까지 다양한 주제를 파헤친다.
'꿈'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를 분석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저자가 한국에 정착한 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는 '꿈이 무엇이냐'였다.
저자는 이 질문과 마주했을 때 가치관, 이상, 삶의 방향성을 묻는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질문은 어떤 직장에서 일할지,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와 자동차를 구매할지 등을 묻는 일종의 자기 브랜딩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기록한다.
한국의 결혼식 문화에 대한 시선도 재밌다. 한국에 와 처음으로 결혼식에 초대된 저자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느낌을 받으며 기뻐했지만, 환상은 금방 깨지기 마련이다. 수백 명의 인파가 몰린 결혼식은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고,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신랑 측 사람들이 축의금을 세는 장면뿐이었다.
이 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국의 모습은 뼈아프다. 그러나 이런 지적의 바탕에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한국이 약자와 소수자를 포용함으로써 더욱 열린사회로 나아갈 것을 권한다. 16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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