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홀로 살 수 없듯, 학교도 저절로 존재할 수 없다. 한 학교가 100년의 역사를 이어오기 위해선 수많은 동문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헌신이 필요하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곤 하지만, 개인주의 사회에서 동문의 의미는 점점 가치를 잃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와 후배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쳐 동문 활동을 이어오는 수창초등학교와 화원초등학교를 소개한다.

◆ 순종 황제의 은사(恩賜)를 받은 학교
올해로 개교 115주년을 맞은 대구 수창초교는 1907년 '사립수창학교'로 개교했다. 수창초교의 기나긴 역사 속엔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고종 퇴위, 지역 군대 해산 등으로 의병항쟁이 격렬해지자 일본은 지방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에게 남부 지역 순시(巡視)를 떠나게 한다. 대구역에서부터 북성로와 수창동, 달성토성으로 이어지는 수창초교 북쪽 길은 1909년 순종이 지나간 길이다.

순종은 그해 1월 7일부터 13일까지 대구, 부산, 마산을 순행했다. 순종을 맞이하기 위해 대구 곳곳에선 환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 와중에 남부 지역 순행이 끝나면 순종이 일본으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지역에 퍼졌다. 당시 수창초교 학생들은 학교 북쪽에 있던 경부선이 지나는 철로로 몸을 던져 궁정 열차를 막고, 순종을 일본군으로부터 구출하자고 결의했으나 교사들의 만류로 불발됐다.

나중에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순종은 학생들의 용기를 치하하며 은사금과 함께 당시 대한제국 관리들이 쓰던 제모를 교모로 은사했다. 수창초교 학생들은 이 교모를 1980년대까지 착용했다고 한다.
현재 수창초교 정문 쪽엔 순종황제남순행로를 알리는 안내와 표시들이 있고 담벼락엔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다.


◆ 오랜 시간이 지나도…학교 사랑은 영원히
예로부터 '의(義)'가 깊었던 수창초교는 동문 간의 의리(義理)도 남다르다.
수창초교는 1961년 2월 1일 구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목조건물이 불타며 23개 교실이 전소하고 소중한 자료들이 소실됐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후 대대적인 교실 증설과 시설 신축을 진행했다. 29회 졸업생이었던 고(故)이만섭 당시 국회의원의 도움을 통해 1969년에 강당 신축이 이뤄졌다.
같은 해 창단한 야구부는 당시 다른 학교 학생들이 부러워했던 팔자 미끄럼틀과 함께 수창초교의 자랑이었다. 정동진 KBO경기운영위원(44회), 김용국 삼성라이언즈 코치(61회), 김성갑 현대유니콘스 코치(61회) 등 많은 유명 선수를 탄생시킨 수창초교 야구부는 학생 수 급감 등으로 2013년 사라지기 전까지 많은 동문의 지원을 받았다.
수창초교 총동창회는 2003년 설립 이후부터 폐지 전까지 매년 100만~200만원의 장학금을 야구부에 기부했고, 55회 졸업생 일동이 별도로 모금을 진행해 1천여 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학교 자체에 대한 동문들의 지원과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4년 수창초교 40회 졸업생 일동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2천여 만원으로 '꿈을 키우자'는 문구가 적힌 표지석을 건립했다. 여기엔 1990년대 대구시 외곽 아파트 개발이 한창 이뤄지며 발생한 도심 공동화로 교세(校勢)가 위축된 모교를 부흥시키자는 동문들의 뜻이 담겼다.
총동창회 활동도 활발하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마다 회장, 동창회, 개인 명의로 장학금을 지급해 2003년부터 지금까지 약 2천만원을 기탁했다.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주춤했으나 4월 동문 체육대회, 11월 산행 겸 야유회, 1·2월 중 신년 교례회를 진행하며 동문 간의 정도 꾸준히 이어오는 중이다.

구일서(57회) 수창초 총동창회 회장은 "수창초가 배출한 인재들은 전국 각지,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동창회는 교직원, 지역사회와 협력해 후배들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로 클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수창초를 빛낸 동문으로는 추경호(59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서정숙(50회) 국민의힘 국회의원, 이만섭(29회) 14·16대 국회 전반기 의장, 이충곤(43회) SL(삼립) 회장, 이맹희(30회) 전 제일비료 회장, 김달웅(40회) 전 경북대 총장, 이원순(41회) 전 대구시 의사회장 등이 있다.

◆ 지역 선비와 유지들이 뜻을 모아 지켜낸 학교
올해로 개교 101주년을 맞은 대구 화원초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온 유서 깊은 학교다.
'화원공립보통학교'로 정식 개교하기 전, 천내동(달성군 화원면) 420번지에 있던 '사립 일신학교'가 화원초교의 시초다.
1909년 설립된 사립 일신학교는 지역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하다가 재정 문제로 존폐 기로에 서게 된다.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 선비들이 근심하던 중 자본 마련과 공립 보통학교 설립 계획을 지역 유지들에게 제안했고, 대부분 찬성을 얻는 데 성공해 1921년 2월 22일 개교했다.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선비 정신'을 기반으로 세워진 학교 답게 의로운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형무소에 끌려가 향년 21살에 순국한 정학이 열사는 화원초교 3회 졸업생이다. 암흑 같았던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1938년 '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화원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어 왔다.

이후 1945년 맞이한 광복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화원초교는 연합군의 주둔지로 교실과 운동장을 제공해야 했다. 천내천 제방에 앉아 널판지를 책상으로 사용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열의는 꺾이지 않았다. 1951년부터 3년 동안 320명의 졸업생을 무사히 배출했다.
여기에 1955년 3월 주둔군대가 철수한 이후 남겨진 군대 물자를 잘 활용해 교실을 새롭게 정비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된다.


◆전쟁 이후 '모교 재건' 뜻 품고 똘똘 뭉쳐
긴 시간 동안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그때마다 화원초교 동문들이 힘을 합쳐 나아갈 길을 모색해왔기에 100년의 역사를 이룩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13일 화원초 총동창회는 모교 운동장에서 '개교 100주년 기념 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총동창회 회원들을 비롯해 문희갑 전 대구시장, 김문오 전 달성군수 등 많은 졸업생과, 강은희 대구시교육감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내빈도 참석해 축하했다.
이날 총동창회는 후배들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학교발전기금 3천만원과 장학금 1천만원 등 총 4천만원을 모교에 기탁했다.
이러한 후배 사랑은 100주년 이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다.
화원초교 총동창회는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모교 재건과 교육 환경 조성에 뜻이 있는 동문들이 모임을 이어오던 것에서 비롯됐다. 그러다 1970년 '화원국민학교 동창회'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1973년 후배들의 학구열을 고취하기 위해 '장학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장학금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요한 행사 때마다 동문들이 발 벗고 나서서 육성회나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아낌 없이 지원했다.
1996년 창립총회와 제1회 체육대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후배들을 위해 매년 장학금과 축구부 발전 기금을 기탁하고 각종 교육 행사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총동창회 체육대회와 골프대회 등도 꾸준히 개최해 동문들간 우정도 유지해오고 있다.

박상태(51회) 화원초 총동창회 회장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온 화원초교가 앞으로도 그 전통을 계속 유지하며 지역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동문들이 힘을 합쳐 노력하겠다"며 "후배들도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서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배우길 바란다"고 했다.
화원초를 빛낸 동문으로는 정학이(3회) 항일 열사, 최수부(22회) 전 광동제약 회장, 권익현(23회) 전 국회의원, 문희갑(27회) 전 대구시장, 문정국(30회) 신성장학문화재단 이사장, 나춘호(32회) 티웨이항공·예림당 회장, 박경호(39회) 전 달성군수, 김문오(39회) 전 달성군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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