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강호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 '브로커'는 엄마이기를 포기한 미혼모 소영(이지은)이 자신의 아기 우성을 교회 바닥에 두며 시작한다.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 아이를 빼돌리는 일당을 검거하기 위해 잠복을 하고 있던 형사 수진(배두나)은 우성을 베이비 박스에 넣어 준다. 수진의 존재를 모른 채,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우성을 몰래 데려간다. 다음 날 우성을 찾으러 온 소영은 '우성을 잘 키울 수 있는 부모를 직접 찾아 주자'는 상현과 동수의 설득에 넘어가 상현의 낡은 봉고차에 올라탄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영화에 세 가지 박스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박스는 베이비 박스다. 두 번째 박스는 봉고차이다. 우성을 혼자 키우는 데 지쳐 있던 소영은 상현, 동수를 진작 만났더라면 우성을 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상현, 동수, 소영은 자신들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봉고차에서 내려선다. 상현, 동수, 소영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 수진은 우성을 맡아 키운다. 감독은 수진이 바로 사회라는 큰 박스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렀던 개인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보다 큰 박스, 즉 사회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감독의 메시지로 보인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 가운데 하나는 '목욕 신'이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에서 '물'은 과거의 죄와 거짓의 얼굴을 잠시나마 씻어 주고, 고립된 개인이 연대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이다. 영화 '브로커'에서는 봉고차를 세차하는 과정에서 비누와 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봉고차에 탄 상헌, 동수, 소영이 거짓의 가면을 내려놓고, 함께하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영화 '브로커'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즈음, 한국에서는 한 가족이 전남 완도에서 마지막 행적을 남기고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5월 28일 인근 바다에서 실종 가족이 탑승했던 승용차를 발견했고,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베이비 박스에서 봉고차, 그리고 사회라는 세 개의 박스를 옮겨 가며 확장됐던 영화 속 우성의 삶과 다르게 부모에게 살해당한 아이의 박스는 사회에서 가족, 그리고 승용차로 축소됐다. 서슬 퍼런 바닷물은 가족을 이어 주는 매개체가 되지 못했고, 아이가 살아남았다면 만나게 됐을 모든 종류의 가능성과 희망은 수장됐다.
완도 일가족 사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한가. 비슷한 유형의 사례를 '동반자살'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 선택을 한 부모의 인식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보도에서는 '생활고로 인한 극단 선택'으로 이 문제를 단순화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인류학자 이현정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은 직·간접적인 경험의 반복을 통해 문화적으로 학습·재생산되는 실천'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생활고로 자살을 선택하며 아이를 살해하는 것을 '동반자살'로 표현해 왔던 이유 역시 '부모의 위기 상황을 가족 전체의 존립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 복지 체제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금융 자산과 부동산과 같은 사적 자산의 구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완도 일가족 사례를 우리는 한 일가족의 비극으로 소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회가 왜 세 번째 박스가 되어 주지 못했는지, 왜 그들의 박스는 그렇게 축소될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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