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련함과 섬세함으로 재탄생시킨 돌의 가벼움…갤러리CNK, 박용남 개인전

7월 21일부터 9월 8일까지

박용남, 6주 간의 여행. 갤러리CNK 제공
박용남, 6주 간의 여행. 갤러리CNK 제공

돌은 물성 자체만으로도 지구의 역사를 품고 스스로 깊이를 가진다. 딱딱하고 무겁고 견고하며, 의연한 모습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영원히 변하지 않을 듯한 그것.

하지만 30여 년간 돌을 소재로 작업해온 박용남 작가에게 돌은 그의 일상을 가볍게, 또는 세밀하게 표현하는 재료다. 그의 손을 거친 대리석은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하는 김밥과 생닭, 케이크, 사골, 쌀알, 호박, 바람 빠진 고무풍선 등으로 재탄생한다.

그는 다양한 색을 지닌 돌에 맞게 오브제를 찾아내 작업한다. 이를테면 검은색 돌은 김밥 재료인 김이 되고, 연분홍빛의 대리석인 포르투갈로사는 생닭이 되는 식이다.

박영택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 "말랑거리는 살을 딱딱한 대리석으로 위장시켰다. 그 돌들은 망막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 넣고 씹고 싶고, 손으로 만지고 싶게 한다. 미술에서 배제되고 소외됐던 감각기관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며 "그는 돌이 지닌 본래의 색상을 회화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질, 돌로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이처럼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대리석이라는 특별한 재료에 그만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긴 세월 돌을 다루며 쌓인 시간과 깊은 생각의 축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터.

박용남 작.
박용남 작.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 작가는 홍익대 조소과, 이탈리아 국립 까라라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끊임없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30여 차례 국내외에서 개인전·그룹전을 열었으며, 이태리 테라지니시청, 테울라다 시립공원, 스코틀랜드 보니스 시립공원, 프랑스 포르까리에르 시립공원, 오스트리아 린다 부룬 국립공원 등 세계 여러 도시에 그의 공공작품이 설치돼 있다.

그가 대구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 'Amass-자연의 자서전2'가 갤러리CNK(대구 중구 이천로 206)에서 열리고 있다. 30여 년간의 작업들 중 대표작들을 모아 전시한다.

그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해 현대적인 작업을 이어가며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주창한 '트랜스 아방가르드'를 따르고 있다.

작가는 "이탈리아 유학 시기에 자연스럽게 접한 트랜스 아방가르드는 전통적인 재료인 대리석과 브론즈를 현대미술로 치환하는 메타포 작업을 유머로 풀 수 있게 했다. 여기에 대리석의 색깔에서 출발하는 오브제의 선택, 상징화 작업으로 전통적 재료를 기반으로 한 나만의 개념적인 팝 아트 작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닭 두마리가 껴안고 있는 작품 '6주 간의 여행'이나 오래 고아낸 탓에 구멍이 숭숭 뚫린 사골을 나타낸 '예기치 않은 희생', 뇌 세포를 시각화한 '생각 쌓기', 바위에 붙은 불가사리를 표현한 '심연' 등 대리석과 브론즈로 표현한 다양한 오브제와 자연물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영국에서 묘비의 재료로 사용하는 돌로 만든 '계란판' 작품은 얼핏 보면 종이로 만든 계란판과 비슷할만큼 가벼운 느낌이다. 돌을 얇게 깎아내, 물성을 벗어나려는 그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최근 작가가 관심을 두고 있는 '나선구조'를 활용한 작품들도 전시된다. 눈으로 보이는 동식물의 실체보다, 그들이 성장하기 위해 진화 과정에서 터득한 '보이지 않는 질서'에 대한 얘기다. 해바라기 씨의 규칙적인 배열을 나타낸 작품 '삶'과 기하학적인 도형을 반복적으로 그려낸 회화 작업들에서는 수행에 가까운 그의 몰입을 엿볼 수 있다.

김소연 갤러리CNK 대표는 "주변에서 본 익숙한 소재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과거 유럽 조각 거장들의 노련함과 재료가 가진 고급스러움, 상대적인 소재의 가벼움이 과거의 명작을 새롭게 해석한 현대미술의 장르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053-424-0606.

박용남 작.
박용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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