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생각하는 힘

강효연 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강효연 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강효연 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한 달 전에 서울의 한 명문대에 계신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안부를 물었는데 돌아온 말은 무겁고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교수님은 학기 말이 되어 학생들의 출석과 성적표를 챙기면서 한 학생이 근래에 결석이 많아 연락을 해보니 학생의 부고를 접하게 된 것이다. 최근 3, 4년 사이 당신 대학에서 학생이 해마다 1명씩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옛말에 똥 밭에서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하는데, 요즘은 삶의 기준이나 가치도 다르고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약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학입시라는 치열한 경쟁 구도 안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아이들은 이 학과에 왜 진학했는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려한다. 대학에 오니 옆의 친구가 자신보다 더 잘하는 것 같고,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고 평가하면서 그 안에서 더 멀리 보지 못하고 바로 고개 숙이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의 차이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없고, 삶의 의미나 철학이 부재하다 보니, 어려운 상황을 접했을 때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치열한 경쟁 사회, 돈이나 실력이 우선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학이나 삶의 진리, 가치는 무엇인지 묻지 않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달려오니 막상 와서 어찌할지 모르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1808년 나폴레옹 1세의 칙령으로 창설된 논술형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있다. 시험은 프랑스어, 외국어, 역사 및 지리, 수학, 철학을 공통으로 치르고 이 외에는 각자가 희망하는 전공 분야에 따라 계열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 시험은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10점 이상을 받은 사람은 점수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는 일반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된다. 1점을 더 얻기 위해 경쟁하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대한민국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대학 서열화가 없고 평준화되어 있어서 가능한 것인데, 눈여겨볼 시험이 있어 소개한다. 필수과목인 철학 논술문제로 4가지 문제가 출제된다. ▷토론은 폭력을 포기하는 것인가 ▷무의식은 모든 형태의 의식과 무관한가 ▷우리는 미래에 책임이 있는가 ▷'텍스트 해설'로 에밀 뒤르켐의 '사회분업론'(1893)의 발췌문. 작년에 출제된 내용으로 4개 중 1개를 선택하여 자기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이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의 역할과 구성원 간의 관계, 바로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와 관련된 관념들을 공부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진정한 교육은 철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존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까. 이것이 마련되어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통섭하고 연대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기고 궁극적으로는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공통된 노력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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