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귀족정으로 퇴행하자는 것인가?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주러시아 대사)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주러시아 대사)

더불어민주당이 '민주 유공자 예우법'을 다시 들고나오며 민주당 소속 163명과 친야권 의원까지 모두 174명이 이미 서명했다고 한다. 5·18 보상법을 비롯해 이미 그 효력을 발동하고 있었던 법들을 종합해 4·19 희생자들에게까지 적용하자는 안이니, 새로울 것도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용납 못 할 법안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표창하고 열심히 뛰다 희생된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며 협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공'과 '희생'을 누가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보상해야 공정한가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그 보상이 일회성이 아니고 우리의 특례법에서처럼 민주화운동을 한 본인만 아니라 후손들까지 누리는 취업, 교육, 의료, 재정 지원 등 폭넓은 혜택이고, 적용 범위가 동학농민운동 참여자까지 일부에서 거론될 정도로 계속 늘어난다면 그것은 새로운 특권층의 형성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법이 없는 상황에서도 2020년까지 8년 사이 '민주화운동 관련자' 특혜로 대학 수시전형에 합격한 학생이 119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다. 경제적 지위의 격차는 어느 정도까지는 경쟁적 능력 발휘의 소산이고 유동적이지만, 특례법으로 규정된 특혜는 사회적 생산성과는 관계없는 특권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이름 아래 활동하는 국회의원들은 민주화 투쟁의 골자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은 소수의 특권층이 권력을 독점하거나 특전을 누리는 것을 막고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고 인격과 기본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권력자의 지위에 올라선 그들이 하는 짓은 무엇인가. 공무원이 되고자 함께 공부한 A가 자기보다도 시험 점수가 낮은 B에게 10% 가산점이라는 엄청난 특혜 때문에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취직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B만이 누리는 다른 특혜를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더 내게 되는 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B는 이미 오래전에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피해를 본 선대를 두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보상법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은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애초에 귀족층·특권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선대가 부국강병이나 법과 질서 유지 등 절대다수의 보호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성공했고 그 덕분에 추종자들이 생겨 나 그들과 후손들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족들이 제공하는 공익의 가치가 미미한데 특권만을 누리는 식객층(pariah)으로 전락하면 혁명적 타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오늘날에는 법적으로 보장된 차별 대우는 고사하고 개인별 능력이나 성별, 인종별 차이에 근거하는 자연발생적 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민주화운동의 전 세계적 추세이다. 그런데 민주화를 존재 이유로 내세워 온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도 무시한 채 과거의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연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특혜를 누리는, 은폐된 신(新)귀족 계급의 뿌리를 이 대한민국에 깊이 심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번 계기에 깊이 따져 보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고 싸우다가 희생당했고 보상받아야 할 유공자와 가족들이 비단 4·3, 4·19, 유신 반대, 5·18, 그 밖의 반체제 운동권에만 있는가. 6·25전쟁 때 산화한 장병들이나 공산군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한 민간인들, 산업재해로 기계에 목이 잘려 나가기도 한 산업 역군과 가족은 어떤 보상을 받고 있는가. 그런 희생자들과 후손들이 공직 시험에서 10%라는 가산점까지 받으며 각종 사회경제적 특혜를 누리는 '민주화운동가'들의 후예들을 위해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것이 공정이고 진정한 민주주의인가.

삼엄했던 5공 시절 386운동권이 '폭도'로 몰릴 때 나는 불의를 보고 분노하며 일어서는 젊은이들이 없다면 나라의 장래가 있겠느냐고 그들을 비호하는 글을 일간지에 실은 적이 있다. 40년이 흐른 이제 나는 변질된 운동권 출신 자신들이나 선대의 희생을 구실로, 그러나 이름조차 떳떳하게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특전만을 누리겠다고 하는 그들의 못난 후예들로부터 순수했던 시절의 민주주의 정신을 구출하기 위해 이 험악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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