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사가 칼을 뽑듯 책장에서 반려도서 한 권을 뽑았다. 시원한 물이 있는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계절, 시공을 초월해 19세기의 한 낭만 작가를 찾아 낯선 걸음을 옮긴다. 오늘 우리가 가 볼 곳은 미국 매사추세츠의 한 호숫가이고, 소개할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작 '월든'(Walden)이다. 조심하시라. 소로의 탄수법에 여름휴가가 화들짝 놀랄지도 모르니까.
월든 호숫가 숲속에 스스로 오두막을 지은 소로는 2년 2개월여를 혼자 살았다. 1년에 4개월은 농사에 집중해 자급자족함으로써 나머지 기간엔 자연을 관찰하였다. 산책과 사색을 즐기며 틈틈이 글을 썼다. 물욕을 내려놓은 소박한 삶의 실천. 그 경험을 열여덟 편의 에세이로 묶은 책이 '월든'이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인재였음에도 소로가 월든 호수로 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소로는 사람들이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월든 호숫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감으로써 대안적 삶이 가능함을 증명하고자 했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명사회에 경종을 울리려 했으리라. 세계의 물질 지향성이 강해질수록 '월든'의 가치는 소중해지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19세기에는 큰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20세기에 이르러 '미국 문학의 걸작'이란 평을 얻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세계인이 애독하는 고전이 되었다.
"호숫가에 살면서 떠들썩하게 웃는 물새나 월든 호수 자체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도대체 저 외로운 호수는 무슨 친구가 있다는 말인가? (중략) 신도 혼자다. 하지만 악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 민들레, 콩잎, 괭이밥, 말파리, 호박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 새집에 처음 거미줄을 친 거미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202쪽)
외롭지 않다고 외치는 이 아름다운 문단을 읽어 보라.(오지게 외롭다는 뜻이다) 평자는 소로가 외로운 소로(小路)를 걸었다고 판단하였다. 시대와 달리 가는 자가 외롭지 않을 수 있으랴. 새집에 처음 거미줄을 친 거미처럼 그가 낯선 길을 걸어갔으므로 법정스님,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수많은 이가 소로의 소로를 소요(逍遙)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급박한 현대와는 달리 작품 속 시간은 더디고, 생각은 한없이 깊고 문체는 늘어져 장황하기까지 하다고. 제한된 지면을 핑계 삼아 한마디로 통찰하자면 이렇다. 그것이 바로 19세기의 낭만이지. 앗, 피하시라. 소로가 튀긴 물방울이 날카롭게 날아온다.
장창수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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