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오후, 우연히 생긴 티켓 한 장을 들고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을 찾았다. 어린이를 위한 창작음악단체 '소리결'이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며 '고종의 선물'이라는 공연을 준비했다. 역시나 공연장에는 어린이들과 젊은 부모들로 가득했다. 어린이라고는 너무 커버린 조카밖에 모르고 '노 키즈 존'의 카페를 선호하는 나는 이런 공연이 어색하다. 빡빡하게 좌석을 메운 아이들의 조잘대는 소리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혼자 조용히 앉았다. 아이들은 클래식음악 공연장에 온다고 나름 댄디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앙상블 연주자들이 나와서 자리에 앉는다. 악기의 배열이 흥미롭다. 플롯, 첼로에서부터 가야금과 드럼도 있다. 어떤 공연일까? 소리꾼 정지혜가 나오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조선의 왕 고종 역을 맡고 있다. 청나라 사신이 왕을 찾아와 황제의 명을 받들라 한다.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의 허락 없이는 다른 나라와의 어떤 수교도 안되며, 조선과 오스트리아의 수교도 일본에서 하라고 명한다. 사신이 떠나고 홀로 남은 고종의 마음은 슬프고 애잔한 현대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공연 가이드 김혜주의 해설에 이어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의 음악이 있었다. 슈베르트의 가곡, 모차르트의 아리아가 연주되었고, 200년 전 죽은 하이든도 살아 돌아왔다. 하이든은 생각보다 잘 생겼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정지혜의 재등장에서다. 그녀는 고수 김기호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불렀는데, 이에 앞서 관객들에게 추임새도 원래 판소리의 일부라고 하며 추임새 넣는 법을 알려주었다. 관객이 모두 공연자가 되는 순간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나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우리는 소리꾼이 가르쳐 준 대로 허리를 펴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추임새 넣는 연습을 했다. 먼저 어린이들이 따라 하고, 어른들이 뒤이어했다. 나는 두 번 모두 따라했다. '얼씨구', '조오타', '어이', '잘한다'... 그런데, 추임새가 하나 더 있었다. 소리꾼 정지혜가 제일 좋아하는 추임새다. '이쁘다!' 나는 더 이상 혼자 생각하지만 않고, 함께 소리를 내며 참여하게 되었다. 추임새에 너무 열심이었나보다. 정작 그녀가 부른 '사랑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중간 가르마에 굵직한 목소리이지만 초록치마에 파란저고리를 입은 그녀는 무척 예뻤다.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게 해준 그녀가 고맙고 예뻤다. 연주자와 관객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그녀의 마음이 소중하고 예뻤다.
한편, 고종은 오스트리아에게 갑옷과 투구를 선물했다. 왜?
고종을 포함한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힘들게 이 나라를 지켜왔는가를 공연장에 온 이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약 70분간 '고종의 선물'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모던 스타일의 극음악이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하고, 클래식과 국악이 함께하고,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역사와 현재가 함께하는,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하는 장소였다. 필자는 오늘도 확인한다. 음악은 위로와 흥을 통한 이음이며 연결이다. 온 정성이 담긴 '비빔밥' 한 그릇이 먹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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