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며 삶이 편해지는 이유 하나를 꼽으라면 세상 풍파를 지나오며, 이말 저말 다 들어보았기 때문에 그리 기분 나쁠 것도 없고 기분 좋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공자는 논어에서 나이 60이면 이순(耳順)이라 하여, 그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크게 놀랄 일도 없는 세상, 흰머리만큼이나 삶의 지혜도 늘어나면 얼마나 좋겠냐고 자문해보기도 하지만, 말 때문에 받는 고통은 누구나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 수 없기에. 일방적으로 날아오는 가시 돋친 말들은 돌이 되어 마음의 벽이 되고, 칼이 되어 곱디 고운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사람 사는 일이 천층만층 구만층이라 '나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비슷한 성향과 기질을 가진 사람끼리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의지하며 살아갈 뿐.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 좋겠지만, 우리는 언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소통한다. 이 소통의 도구인 말, 평소에는 사랑의 언어로 달콤하기도 하고, 때로는 격려와 응원의 소리로 지친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 같지 않은 당신'은 항상 내 마음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 않기에 서운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다가 섭섭한 경우는 생길 수 있다. 그때 우리는 무언의 몸짓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직접적인 방법, 대화라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잘못된 것도 없고 평소와 크게 다른 바 없는 대화이지만 (이럴 때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두고 서로 대화하지 않기를 권하지만) 이 시기에 대화는 사뭇 다른 색을 가진다.
◆세상 가장 쉽게 상처받는 일, 바로 말에서 시작.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되면 그 관계는 끝이 나기 쉽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는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조절되지 않는 감정을 고스란히 토해낸다. 마치 누구 기억이 더 정확한지 확인하는 것처럼 섭섭함을 토로하며 자신이 이만큼 잘 참아왔다는 말하기 시작한다.
자기 생각이 정답이고 진실인 것처럼 상대에게 진심이라는 부제(副題)를 붙여 소리 없는 울부짖음을 알아달라고 말하지만, 상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도 똑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정상적인 마음 상태에서 하는 말의 주파수는 결코 타인의 마음까지 전달되지 못한다.
말로서 천 냥 빚도 갚지만, 천 냥 이상의 손해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웅변을 배우러 다닌 기억이 난다. 남들 앞에서 말을 떨지 않고 잘하려는 바람으로 한 번 정도는 다녀보았을 웅변, 나이가 들어 웅변은 스피치라는 이름으로 배움을 이어나간다.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해서 짜임새 있는 말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말을 굳이 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비록 말함이 어둔하더라도, 남들이 때로는 안타깝게 보더라도 진실성 있는. 지킬 수 있는 그리고 독이 없는 말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며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책임질 수 없는 말을 곧 잘한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해결될 것처럼 하다가, 정작 알고 보면 그냥 해 본 말이었고 근거 없고, 꼬리가 없는 말인 경우를 본다.
그럴 때면 지위에 맞지 않게 참 가볍다는 생각을 하며 실망을 한다. 그리고 그런 인연은 이어나가려 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며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빈말이 줄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취중이라도 말수가 늘어져서는 안 되고 지키지 못한 말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 말, 진정 잘하는 비결은 내면에서 나와
얼마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자폐성 장애가 있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그녀의 모습이 대견하고 흐뭇하다. 이 드라마에는 언변에 뛰어난 변호사들과 머리가 비상한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등장한다. 현란한 말솜씨를 볼 때면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주인공만큼 사건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의 생각은 정형화되어있었고, 말에는 혼이 들어있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로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한다. 반대로 그녀의 말에는 진심(眞心)이 담겨 있다. 아니 타산지석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아픔을 도와주려는 사랑까지 묻어있다. 그래서 무엇이든 느리지만 보는 시청자 역시 "그래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하지"라며 공감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며 말에도 품격이 생기고, 경험을 통해 말의 결은 완성되어 간다. 좋은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은 말에도 울림이 있고, 나쁜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된 사람의 말의 결은 거칠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처음부터 정해지지 않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그에 상응하게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 인간의 본능이다.
말로서 상처를 주지 않고 말의 울림을 다른 이와 공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길이 아닌 길은 가지 않듯, 말 같지 않은 말은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빨리 대답하려 뇌를 거치지 않는 듯 말하지 말고, 사고라는 프로세스를 거쳐 말은 해야 한다. 때로는 느리다는 이유로 억울한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억울함을 풀려고 진흙탕에서 말을 섞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곳을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언젠가는 정화될 시기는 반드시 온다. 굳이 애써 자신을 말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침묵은 최선의 대답이 될 수 있으며, 스트레스 받으며 힘겹게 지나간 시간은 절대 보상되지 않는다.
말, 진정 잘하는 비결은 내면에서 나오는 당당함에 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의 결, 그곳에 답이 있다. 나를 완성해나가는 것은 명함에 무엇을 적느냐가 아니라 오늘 내가 하는 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최경규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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