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라면

이재근 신부

이재근 신부
이재근 신부

나는 라면을 좋아한다. 특히 면발이 꼬들꼬들한 상태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푹 퍼진 면발이 최고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퍼진 라면은 종일 굶어 배가 무척 고픈 상황이더라도 먹지 않는다. 그만큼 나에겐 맛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푹 퍼진 라면을 먹었던 적이 있다.

4년 전, 나는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하루 다섯 끼를 기본으로 먹었고 자기 전에 야식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이 먹는 것이었고 제일 싫은 것이 운동이었다.

그런 내 성향을 반영하듯 나의 몸무게는 어느새 100kg을 넘겨버렸다. 그 당시 받았던 종합검진 결과는 매우 처참했고 결국 나는 살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하루에 주먹 반 정도의 밥만 먹고 소금을 거의 먹지 않으며 매일 운동을 했다. 그 결과 두 달 만에 20kg이 빠졌다. 하지만 뭐든지 급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갑작스럽게 행한 다이어트로 몸에 이상이 생겼고 결국 드러눕게 됐다.

몸이 아프니 그토록 좋아하던 밥도 먹기가 싫었다. 움직일 힘도 없었고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물만 먹으며 누워서 지낸지 4일 정도 됐을 때 갑자기 아버지께서 찾아오셨다. 평소 무뚝뚝하고, 내가 아무리 아파도 별 신경쓰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방문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방에 들어오신 아버지께서는 나를 한번 보시고는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그리고 부엌에서 무언가 만들기 시작하셨다. 40년 넘게 살아오며 아버지가 주방에 계신 모습은 처음 봤다. 10분 뒤 아버지는 라면을 끓여 오셨다. 퍼진 라면이었다. 배가 고파도 먹지 않는 퍼진 라면을 식욕도 없는 나에게 끓여 오신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내뱉고 집으로 가셨다.

"라면은 퍼진 라면이 제일 맛있어."

너무나 먹기 싫었다. 냄새도 맡기 싫었다. 하지만 아들이 걱정이 돼 난생 처음 해주신 요리를 버릴 수는 없었다. 라면을 바라봤다. 면은 퍼져있고 물은 한강이었다. 한 젓가락 먹었다. 지금껏 먹어본 라면 중에 가장 맛없었다. 이렇게 맛없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라면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맛이 없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이후 나는 기운을 차렸고 지금까지 80kg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 '사랑의 맛'이라는 게 있다. 이 맛은 맛없는 음식을 먹는데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슬픔에 빠져있는데도 마음이 따뜻해지게 해주며,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고픈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아버지가 나에게 끓여주신 라면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맛없는 라면이었다. 그러나 사랑의 맛이었다.

나는 여전히 라면을 좋아한다. 심지어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라면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4년 전 아버지가 끓여주신 라면보다 더 맛없는 라면은 아직까지 못 먹어봤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먹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사랑의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퍼진 라면이 그립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지만 가장 생각나는 아버지의 라면 말이다.

조만간 아버지께 라면 좀 끓여달라고 부탁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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