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민주화 유공자법’ 재추진 유감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1987년 4월. 전두환은 1년도 안 남은 임기 중에 개헌이 불가능하다며, 당시 5공화국 헌법대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특별 담화를 발표한다. 대통령 간접선거 조항을 유지하겠다는 '호헌'(護憲) 조치다. 이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열망하던 국민들의 민심 폭발 도화선이 됐다.

그해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은폐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상승했다. 전국의 대학가에도 시위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경찰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사망하면서 범국민적 시위로 확산됐다. '6월 항쟁'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민중 봉기는 한 달 가까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학생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 직장인들 소위 '넥타이 부대'가 대거 가세했다. 일반 시민들도 최루탄 냄새에 눈을 뜨지 못하면서도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전국 대도시 거리가 "호헌 철폐, 직선 쟁취"를 외치는 인파로 가득 차자 당황한 정부는 계엄령 선포를 검토할 지경이었다. 국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결국 군부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은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대체로 유혈 사태 없이 권위주의 체제를 굴복시킨 항쟁으로 기록된다. 특히 '시민들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확산을 이룩한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최근 6월 항쟁에 기여한 유공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자는 '민주 유공자법'이 재추진 중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지속적인 발의가 있었고, 최근 발의된 법안 기준으로는 2년 만의 재점화다. 당시에도 '운동권 셀프 특혜' 비판에 직면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법안을 주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4·19 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처럼 6월 민주화 유공자도 예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소야대인 국회 상황에서 소속 의원 169명 중 164명이 찬성해 9월 정기국회에서 단독 처리까지도 가능해 보인다.

법안 주요 내용은 사망자, 행방불명자, 부상자 등 유공자 자녀에게 대학 편입학과 정부 및 공공기관, 기업 취업 때 10% 가산점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또 교육·의료비, 저리 융자, 공공·민영주택 우선 공급 등 혜택도 포함된다. 이러한 끈질긴 입법 추진에 민주당 출신 일부 인사들이 "과도한 지원에 대해서 납득하기 힘든 개정안"이라며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고백한 바도 있지만, 민주당은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해라고 항변한다. 실제 수혜자는 800명가량 극소수라는 점을 강조한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 당시 민주당 정권은 공공의대를 신설하겠다며 사회단체 추천 전형을 발표했다가 운동권 자녀 세습이라는 뭇매를 맞았고 의정(醫政) 대립이라는 극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5·18 민주화 운동도 선정된 유공자가 현재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법으로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18기념공원 벽면엔 4천29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만 보훈처 4천407명(2018년 8월), 광주시 5천807명(2018년 12월)으로 수가 늘고 있다.

사회 발전을 위해 희생하신 분에 대한 받듦은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예우와 특혜는 다르다. 유공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맞지만 그 가족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보상엔 공감이 어렵다. 민주화 시기를 겪지 않은 지금의 청년들에게 기회의 상실을 경험케 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화 유공자들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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