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읍참마속과 윤핵관들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읍참마속(泣斬馬謖). 촉(蜀) 승상 제갈량(諸葛亮)과 그 부하 마속에 얽힌 고사성어다. 제갈량은 군사 요충지 가정(街亭) 수비를 마속에게 맡겼다. 마속은 산기슭에 진을 치라는 제갈량의 명을 어기고 산꼭대기에 진을 쳤다. 공을 세우겠다는 욕심이 그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마속은 대패했고, 제갈량은 공정한 군법 시행을 명분으로 마속을 참형에 처했다.

공사(公私) 구분, 신상필벌(信賞必罰) 등 읍참마속은 제갈량의 훌륭함을 보여주는 고사성어지만 뜯어보면 논란의 여지도 많다. 제갈량과 마속 모두 '문제적 인간'이어서다.

유비(劉備)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갈량에게 "마속은 말이 너무 앞서고 사람들 평이 실제보다 부풀려 있으니 크게 쓸 재목이 아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마속의 능력을 의심하면서도 중책을 맡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제갈량이 마속을 참형에 처하라고 명하면서 흘린 눈물은 마속을 잘못 기용해 비극을 초래한 자신에 대한 회한(悔恨)의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능력도 안 되면서 제갈량을 졸라 스스로 중책을 맡은 마속의 행동 역시 비극을 잉태했다.

국민의힘 내분 사태 와중에 읍참마속이 회자(膾炙)하고 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으로 대표되는 신주류 인사들에 대한 읍참마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 첫 대상으로 꼽히는 인사가 권성동 원내대표다. 그는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 대통령실 직원 채용 논란과 관련한 부적절한 해명,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 공개 등 초대형 잘못을 세 건이나 저질렀다. 마속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장제원·이철규 의원 등 다른 윤핵관들도 세를 과시하거나 이준석 대표와 쓸데없는 논쟁을 벌여 이 대표를 더 키워주는 실수를 범했다.

마속과 같은 인사들이 국민의힘에 너무 많다. 실력도 안 되는데 요직을 차지하거나 실세로 행세하며 권력 놀음을 하고 있다. 전쟁에서 패한 것도 마속의 잘못이지만 자신을 기용한 제갈량에게 부담을 준 것도 잘못이다.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거나 자결하는 게 옳았다. 윤핵관들은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말고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2선으로 후퇴하는 게 맞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에게 읍참마속을 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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