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비상선언’

항공기 내 치명적 바이러스 유포…테러 공포와 맞선 사람들 이야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임시완 등 충무로 최고 배우 대거 출연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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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은 한국형 신파 재난영화다. 재난을 신파와 묶어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던 그 많은 한국형 재난 영화의 하나이며, 다르다면 항공편으로 갈아탄 것이 색다를 뿐이다.

북새통을 이루는 국제공항. 말쑥한 청년 진석(임시완)이 공항 직원에게 묻는다. "여기 사람들 많이 타는 비행기가 뭐예요?" 그리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올라탄다. 이 비행기에는 베테랑 형사 팀장 인호(송강호)의 아내와,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이 있는 재혁(이병헌)도 딸과 함께 탄다.

화장실에 들어간 진석은 뭔가를 뿌리고, 곧이어 한 남자가 피를 토하며 사망한다. 형사 인호는 비행기 테러를 하겠다는 남자의 인터넷 영상을 보고, 그의 집을 찾아간다.

'우아한 세계', '관상' 등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유포된 항공 재난을 그린 영화다. 항공기 내에 퍼지는 공포와 함께 이를 테러로 규정하고 대처하는 사람들의 분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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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박해준 등 내로라하는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실제 대형 비행기를 들여와 세트로 제작해, 360도 회전시키며 비행기 안의 충격과 승객의 아비규환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핸드헬드로 촬영해 긴박감과 사실성을 더한다. 용의자가 탄 배달 오토바이와 추격전 등에서도 원테이크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방송화면과 휴대폰의 통화영상 등을 적절하게 구사해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감독은 재난을 당한 당사자와 가족, 재난을 막기 위한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과 인호, 재혁 등 많은 캐릭터들에게 이런 다큐멘터리의 질감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훔쳐 보는 듯한 일상의 시선과 급박할 때의 클로즈업 등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을 한다. 마치 신문 지면을 훑어보는 듯 그들을 스케치한다.

이는 재난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애타는 노력을 통해 희망을 엿보겠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파편적인 시선은 그 어느 캐릭터도 매력을 쌓아가지 못하는 결과를 빚고 만다. 영화 속 그 어떤 캐릭터도 살아 꿈틀대지 않는다. 내면은 평면적이고, 성격 또한 고착돼 있다. 인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애틋함은 없고, 재혁도 딸을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단발성이다. 숙희도 정의로운 장관의 모습을 견지하려고 애쓰지만 인물의 입체적인 성격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비상선언'은 항공기의 정상적 운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기장이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언하는 비상사태를 말한다. 이런 비상사태에서 인물들의 격정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을 기용해 이런 사태를 야기 시킨 것은 국력 낭비 아닌가?

각각의 캐릭터가 서사를 쌓아가지 못하니, 스토리 또한 주춤거리며 나아가지 못한다. 이 방 저 방 전전만 할 뿐 건물이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재난영화의 장점은 뚜렷한 해결점을 제시하고 나아가면서 긴장과 쾌감을 주는 장르다. 전염성을 강한 바이러스 테러의 범인이 비행기에 타고 있고, 그를 잡으면 해결할 길이 열려야 하고 모두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비상선언'에서 범인 진석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동기조차 밝히지 못하고 영화 초반에 사라진다. 결국 인호가 해결점을 찾지만, 이번에는 비행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재혁이 해결하나 싶더니 또 착륙이 문제다. 연료가 부족하다더니, 또 착륙불가로 전투기가 날아든다.

갈등과 해소가 오락가락하면서 스토리의 개연성이 사라지고, 캐릭터는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정도이고, 스토리는 갈수록 산으로 가는 것이 영화 자체가 총체적인 재난이다. 이쯤 되니 관객의 피로감은 배우들보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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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감독이 결국 찾아가는 것이 신파다. 사실 신파적 요소는 재난 영화에서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인공 조미료는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탄탄한 스토리 속에서 허용된 범위 내에서 간을 쳐야 영화의 맛을 더한다. '비상선언'은 관객에게 신파의 국그릇을 들이 민다. 요리에 자신이 없는 요리사의 횡포다.

'비상선언'은 호흡기로 감염‧변이하는 바이러스, 국민과 국가 간의 갈등 등 현시대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안에서 기침도 못할 정도로 관객의 공감도만은 높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140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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