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가슴 조이며 살지 마라

최경규

조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온 집 안을 뛰어다니는 이제 막 한 살을 지난 강아지를 본다. 강아지 역시 나름의 즐거움과 슬픔이 그의 삶에 동반되겠지만, 우리 인간보다는 복잡하지 않은 듯하다. 식구들이 밖에서 들어오면 떨어질 정도로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와 안기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감정, 바로 '진심'이다. 어제 시끄럽게 짖어 나무랐다는 기억으로 오늘 마지못해 달려오는 것이 아니다.

이 모습을 볼 때 사람은 참으로 많은 생각 속에서 진심을 포장한 가식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가식을 내세워 진심을 보이기도 한다. 강아지가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가슴 졸이며 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이 밥을 주지 않으면 길거리라도 나가면 된다는 배짱으로 살기 때문인지, 아니면 설마 굶기지는 않을 거라는 긍정적인 마인드에서 나온 태도인지는 몰라도 머리 좋은 인간보다 더 나은 구석이 있는 듯하다.

◆잘 사는 비결, 진심으로 살아야

우리가 가슴을 졸이며 사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보여진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회라는 섬에 살면서 느끼는 인간관계에 대한 조심스러움일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우리의 감정 소모는 어제보다 덜할 수 있고, 느껴지는 삶의 무게도 가벼워질 수 있다.

지금껏 많은 인연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기쁨과 슬픔을 그네들과 느껴왔다. 오래된 지갑 속에서 발견된 이제는 희미해진 사진처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리 복잡할 필요도 없었는데 우리는 참으로 수많은 공식을 인생의 전략처럼 세우고 예견하며 때로는 성공이라는 말로 축하하고 때로는 실패라는 단어로 자책하곤 한다.

삶의 굴곡을 거치며 누구나 가지게 되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데, 세상은 단순할 때 더 가볍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持論)이다. 단순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냥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과 깊이 하는 것은 엄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란 생각은 깊이 하되 쓸데없는 생각들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이라는 부제를 붙여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고,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 복잡함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두지 말자는 말이다.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다면 내일에 무게중심을 두지 말고 오늘을 제대로 살면 된다. 오늘을 잘 사는 비결이 있다면 바로 '진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초등학생은 늘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가 건네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에는 진심이 있다.

어색함에 눈인사로 대충 얼버무리는 말이 아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누구를 만날 때, 갈수록 양파와 같다고 느끼는, 그리고 진심이 결핍된 인연은 오래가지 못한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제조업을 하다가 서비스업은 처음인데 무엇을 신경 써야 할까?" 그의 질문에 나는 간단히 "지금과 별다를 것이 없을 것 같아, 지금까지 물건을 만들 때 너는 최선을 다했지, 이제부터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면 될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세상에 고장 나지 않는 물건은 없다. 그러기에 서비스센터가 존재한다. 우리는 구매할 때 물건만을 사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진심 어린 서비스를 기대하며 선택을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세상이란 퍼즐 한 조각을 들고 있다면 그 퍼즐을 언제 어떻게 맞출지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들고 있는 퍼즐의 무게에 눌려서 살 필요는 없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 본 지혜로운 사람들은 "퍼즐, 여유를 가지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만이 결국 잘 산다"라고 한다. 비록 지금 퍼즐이 잘 맞지 않더라도 너무 애태우며 살지 마라.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친한 선배 아버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에 조문하고 왔다. 며칠 만에 수척해진 선배를 보다가 울적한 마음에 돌아오는 길 혼자 집 근처 포장마차를 찾았다.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있는데 옆 테이블 어떤 부자(父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온 면도조차 하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이들은 말이 없다.

십 분이 지나도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돌아보니, 아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고 무언가를 보고만 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보며 말없이 고등어 살을 발라 아들 밥 위에 얹어준다. 혹여 가시라도 있을까 작은 눈을 찡그리면서,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의 침묵에 소주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오늘 선배가 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오늘 본 부자의 모습, 여러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운다. 비록 기억을 못 하겠지만 선배 역시 어렸을 적 이럴 때가 있지 않았을까? 왜 그때는 아버님에 대한 마음이 없었을까? 어째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진심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일까? 소년 역시 시간이 흐르면 그때서야 흑백영화를 보듯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기억하게나 될는지. 그때 흐르는 눈물이 오늘 장례식장에서 흘린 선배의 눈물보다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슴 조이며 살지 말자. 바람보다 더 빠른 세상, 움켜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세월은 빨리 도망간다. 진심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보자.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보자. 단순하게 살수록 수많은 것들이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최경규

최경규 심리상담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