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8월입니다. 역사관 근처 경상감영공원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거리에 매미 소리가 가득합니다. 할머니! 그 곳에서는 평안하신지요. 단 한 번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해본 일은 없어도 할머니가 남기신 증언과 노래, 영상들이 우리로 하여금 할머니가 어떤 분이셨을지 상상해볼 수 있곤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김학순 할머니를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을 하셨고, "다 잊고 살면 될 이야기를 무엇 하러 꺼내느냐" 하는 주변인의 날선 반응에도 용기 내어 사죄와 배상을 일본 정부에 요청하셨지요.
버마 랑군에서 만달레이로, 아키압으로 끌려다니며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야 했음에도 할머니께서 단 한 번도 주저앉아 삶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해방 후에 모든 고초가 끝났다면 좋으련만 귀국 후에도 가난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사회적 비난과 편견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위안부'였다는 꼬리표가 할머니의 삶을 따라다녔음에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고통에도 언제나 씩씩하고 우직하게 가족들을 책임지셨던 할머니를 과연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요.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닐지라도 아이들을 길러내며 "부양가족이 늘었지만 자식의 존재는 오히려 내게 일할 힘이 되었다"고 하셨던 할머니의 말씀은,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할머니의 강인함을 짐작케 합니다.
지난 6월 6일, 현충일이자 대구경북피해자 추모의 날로 할머니가 안치된 시립납골당을 찾았던 때가 기억납니다. 할머니가 목소리를 처음 내신 날부터 3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240명이던 피해자들은 그 30년간 하나둘 스러져 저희 곁에는 이제 열한 분의 할머니께서 남아계십니다.
미처 마주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님들을 영정사진으로나마 뵈며 이용수 할머니께서 기억하는 할머니의 생전 모습에 대해 들었습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어디서든 구성진 가락을 뽑아내셨다는 할머니, 조금은 서투른 데가 있었다는 할머니. 우리는 할머니를 기억하는 누군가의 기억을 받아 우리 안에 다시 '문옥주'를 되살립니다.

할머니를 이야기하기 위해 故모리카와 마치코씨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대구 러닝 크루(DRC) 및 시민들과 진행했던 '문옥주의 길'에는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기억 뿐 아니라 국경과 민족을 넘어 할머니와 우정을 나누었던 모리카와 씨와의 치유의 순간 역시 담겨 있습니다. 할머니와 직접 마주하며 직접 증언을 채록했던 3년간 모리카와 씨는 할머니가 끌려가셨던 대구역으로 찾아와 할머니를 만났으니까요.
할머니께서 위안소에 있을 적 전시우편저금에 저축한 돈을 되찾아주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14개월이나 미얀마를 돌아다녔습니다. 그 사이에 50년의 간극이 있었지만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현하려는 사람 앞에서는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요. 모리카와 씨는 2019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6년간 노력했으니까요.
그리고 2022년 현재 우리는 문옥주 할머니와 모리카와 씨의 발자국을 따라 다시 이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대구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남아있는 한, 그리고 우리가 할머니들 한 분 한 분의 기록을 잊지 않고 보관해두는 한, 할머니께서는 잊히지 않고 저희 안에 영영 남아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가오는 8월 14일은 열 번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할머니를 비롯해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진정한 회복과 안녕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남아있는 우리는 오늘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그곳에서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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