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故 현은경 간호사의 살신성인, 사회 전체가 책임 의식 각성해야

경기 이천에서 발생한 투석 병원 화재 사건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붙잡고 사투를 벌였을 고(故) 현은경 간호사의 희생정신이 책임지는 것에 뒷전인 세태에 잔잔한 파문을 남기고 있다. 자신이 살겠다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한 명의 환자라도 더 대피시키려 했을 것이 분명하기에 안타까운 심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처음 불이 시작된 곳은 투석 병원 바로 아래층인 3층 실내 골프연습장으로 추정된다.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인 3층에서 발생한 불로 4층 병원까지 연기가 들어왔고,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대피시키려 애썼지만 현 간호사와 환자 4명 등 5명이 숨지고 42명이 다쳤다.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우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부른다. 책임자가 가져야 할 자세다. 현 간호사의 조치는 특히나 책임 있는 이가 줄행랑치던 모습과 대비돼 울림이 크다. 우리에겐 세월호 사고 당시 선장이 보였던 작태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배 안에 있던 학생들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해 놓고 자신은 기를 쓰고 도망쳤다.

현 간호사의 의로운 죽음에 온 국민이 탄식하는 이유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사건 사고에는 어김없이 '인재'(人災)가 따라붙는다. 이번에도 화재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장치들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달 발생한 비극인 대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서에도 드러난 문제점이었다. 대피로 미확보, 스프링클러 미설치가 무고한 희생을 불렀음을 가슴 치며 안타까워하지 않았던가.

책임자의 기본 덕목은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 상황을 미리 대비하는 데 있다. 노약자가 많이 이용하는 시설의 경우 시설장은 물론 건물주 역시 꼼꼼히 살피는 데 애써야 한다. 소방 당국도 위험성이 높은 공간의 화재 대비 설비 미비를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개선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처가 갑갑하지만 더 많은 희생이 있기 전에 확실히 매조질 일이다. 재난은 준비한 만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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