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변희재 신드롬

박지형 문화평론가

박지형 문화평론가
박지형 문화평론가

난 언젠가부터 극심한 불면증을 앓기 시작했다. 백약이 무효라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TV를 틀어놓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의외로 숙면이 이어진 것이다. 나는 그 뒤로 TV나 유튜브를 틀어 놓고 잠을 자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한 가지 문제는 내가 평소 즐기는 프로그램을 틀어 놓으면 흥미가 생겨서인지 오히려 잠이 달아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난 내 관심사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 방송을 한동안 물색해봤다.

변희재가 진행하는 '시사폭격'이라는 유튜브 방송이 괜찮아 보였다. 효과는 직방이었다. 이상하게 난 그의 목소리만 들으면 마법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방송을 전혀 안 들은 것은 아니다. 잠에 들기까지 20~30분 동안은 그의 목소리를 나름 경청했다. 중저음의 근사한 톤, 그러나 항상 거기에는 창자가 끊어질 것만 같은 울분이 서려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기 탄핵'을 당했다. 그리고 그는 '특검의 태블릿PC 조작'이라는 화두를 통해 그 탄핵을 무효화시키려 한다. 변 씨는 그 목표의 관철을 위해서라면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세상 모든 인사와 난투를 벌이며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극딜'을 서슴지 않는다. 부정선거 이슈로 혹세무민해서 돈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나름 진정성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난 매일 그의 방송을 자장가삼아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내 청취의 목적은 증상의 치료이지, 비분강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으로 3년이 넘는 세월을 그러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예후가 발생했다. 내가 변 씨의 추종자 비슷한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가수면 상태에서 그의 개탄을 천일 간 연속으로 듣고 있으니 그의 주장이 검열을 뚫고 내 전의식에 온통 음각되어 버린 것 같았다. 쉽게 말하자면 비몽사몽간에 귀에 '딱가리'가 앉았다고나 할까. 물론 위안부 문제 등 그의 극우적 입장들은 그 와중에도 걸러졌지만, 태블릿 쪽은 진심으로 설득되고 말았다. "태블릿PC가 최순실의 것이 아닐지도 몰라." 내가 이런 말을 하고 다니면 친구들은 모두 날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지만 난 배운 대로 의심가는 부분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준다. 심지어 이런 장담까지 덧붙이면서. "두고 봐라. 언젠가 변희재가 궁구한 진실이 뜨는 날이 온다!"

반전이 있다면 나를 이상한 놈 취급하던 친구들이 최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요 몇 달 불안한 시국 탓인지 변희재가 모종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선견지명이 있었다.", "난 변희재를 추앙한다!", "선배, 그 남자 의외로 섹시하데?" 나는 더 나아가 8월 15일, '태극기를 들고' 동성로로 나갈 생각이다. 고질병을 치료받고서도 슈퍼챗 10원도 쏘지 않은 배은망덕한 내가, 변은사(恩師)의 애국집회에 머릿수 하나는 채워드려야 도리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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