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1> 피아노의 위안, 리스트의 ‘Tröstungen’

계명대 교양교육대학인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인 서영처 시인이 매주 한차례씩 클래식 음악을 소개합니다. 그는 대학·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피아노악어'와 '말뚝에 묶인 피아노', 음악 에세이집 '가만히 듣는다' 등이 있습니다. 〈편집자 주〉

서영처 계명대 교수
서영처 계명대 교수

오래전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다른 직업에 비해 음악가들이 유독 건강하고 장수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생각도 하지 않고 즉시 이런 대답을 했다. 아마도 소리가 에너지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실제로 아름답고 진실한 소리의 에너지 속에서는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작동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음악은 선으로 정의될 수 있다.

소리는 진동이고 물리적인 현상이지만 또 생명을 의미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소리를 지닌다. 소리를 정기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소리는 창조의 원음처럼 세계를 지탱시키는 에너지이다.

가장 원시적인 언어는 음악이었다. 언어학자들은 최초의 언어가 아! 오! 우! 같은 감탄사였다고 추정한다. 이 짧은 감탄사의 고저장단 속에는 발화자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어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음악과 언어의 기원은 다르지 않다. 번역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음악은 만국 공통어이며, 시대와 장소, 환경과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는 음악은 언어 이상의 언어이다.

대부분의 예술이 결핍과 고독 속으로 파고들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파헤치지만 음악은 이러한 위기의 순간을 채워준다. 음악은 긍정의 언어이고 감성의 언어이며 느낌의 언어이다. 그래서 언어를 능가하는 호소력과 전달력으로 존재를 껴안는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 덕에 리스트(1811~1886)가 대중들에게 널리 각인되고 있다. 임윤찬이 준결선에서 연주한 화려한 테크닉의 '초절기교 연습곡'과 달리 'Tröstungen'(위안)은 야상곡 풍의 자유롭고 절제된 곡이다. 6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소품집에서 3번 '고독 속의 신의 축복'이 가장 유명하다. 리스트는 '위안'에 쇼팽의 서정성과 템포 루바토를 반영했다. '위안'은 표제에 나타나듯이 오르페우스 신화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음악의 치료적 기능을 드러낸다.

어쩌다 퇴근 시간에 FM에서 흘러나오는 '위안'을 들을 때가 있다. 음악을 듣는 순간 지친 몸과 마음이 한결 이완되는 것을 느낀다. '위안'은 변화와 경쟁의 시대에 낙오하지 않기 위해 쫓기는 도시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들려준다. 따뜻한 손길로 "수고 했어요"라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는 것 같다. '위안'은 청각을 통해 한없이 부드러운 촉각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촉각은 진실한 감각이다. 이 '청각의 촉감'은 보다 내밀한 후각적 감각까지 함께 불러온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인의 은은한 체취이거나 나를 기다리는 저녁 식탁의 풍요로운 냄새 같은 것이다. 냄새는 다시 시각과 미각을 자극한다.

리스트의 '위안'은 오감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소요(逍遙)와 실존에 대한 전망을 들려준다. 그리고 음악이 종교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많은 사람이 '위안'을 좋아하는 까닭은 피아노 선율이 외로운 존재를 어루만지면서 고독의 힘으로 현실을 초월해 나가는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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