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침체에 빠졌는지 판단하는 간단한 규칙이 있다. 두 분기(分期) 연속으로 국내총생산 증가율이 마이너스면 경제 침체를 의심한다. 이러한 상황을 기술적(technical) 침체라고 한다.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1분기 –1.6%, 2분기 –0.9%다. 미국 경제는 '기술적 침체'에 빠졌다. 미국 경제는 '침체'인가. 그건 모른다. 아니 몰라야 한다. 공식적으로는 '경기순환결정위원회'가 경제 침체 여부를 결정한다.
크루그먼(Krugman) 교수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경기순환결정위원회가 침체로 판단해야 침체인 것이다. 현 시점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조만간 침체가 시작될 수 있다. 가능성이 낮지만 이미 침체가 시작됐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지금 침체를 선언할 이유가 없다." 옐런(Yellen) 재무장관은 한술 더 떴다. "미국 경제가 광범위한(broad) 침체에 빠졌다는 어떤 조짐도 발견하지 못했다." '광범위한 침체'는 또 뭔가.
우리 경제도 심상치 않다.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소매판매액 지수가 4개월 연속 감소했다. 무역수지도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0조 원이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IMF 외환위기 때 적자를 초과할 것이다. 지난 5월 10대 기업이 1천조 원을 투자하고 26만 명을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SK하이닉스가 4조 원이 넘는 청주공장 증설을 보류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조 원 규모의 미국 투자를 연기했다. 삼성이 3년 만에 사장단 회의를 개최했고, 포스코그룹은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경기순환결정위원회가 없다. 기획재정부가 그린북을 통해 현 상황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향후 경기 둔화 우려가 있다." 말의 성찬(盛饌)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펀더멘털(fundamental)이 좋아서 위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 한다. 많이 들어 본 얘기다. 하지만 경제 위기는 사람들의 비관적인 예상으로 인해 오기도 한다. 경제 위기를 예상하면 소비자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하지 않는다. 대신 저축이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경제가 더 침체한다. 사람들이 달러 환율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 원화를 달러화로 바꾼다. 실제로 환율이 오른다. 케인스(Keynes)는 경제가 심리적 현상이라고 했다.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라는 개념이 있다. 많은 사람이 경제 위기를 예상하면 실제로 경제 위기가 온다. 경제 위기가 닥쳐올 때까지 정부가 그것을 부인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징비록(懲毖錄)을 보면 류성룡이 김성일에게 "의견이 황윤길과 전혀 다르니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러시오"라고 묻는다. 김성일이 답한다. "나 역시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소. 나라 안 인심이 동요할까 봐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오."
1997년 12월 IMF 외환 위기가 시작됐다. 1997년 3월 C일보는 캉드쉬(Camdessus) IMF 총재의 말을 통해 이런 보도를 했다. "전혀 위험스러운 상황이 아니며 한국 경제는 올해 견실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것이다." 1997년 9월 C일보는 다시 캉드쉬의 말을 인용했다. 이때도 캉드쉬는 한국은 태국 외환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 C일보가 '외환 보유액 감소, 큰 걱정 안 해도 될 3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그저 기시감(旣視感)일 뿐인가.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가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아내가 그 사람을 걱정한다. 내 반응은 이렇다. "우리 걱정이나 해. 저 사람은 우리보다 열 배는 잘 살아.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우리보다 가난한 사람은 없어." 이 말은 위악적(僞惡的)이지만 진실이다. 경제 위기는 갑자기 온다. 경제 위기가 오면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정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한다. 각자도생. 지금까지 내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체득(體得)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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