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의 시대를 사는 동안에도 굴욕의 참담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슬픔이 온몸을 짓이길 때조차 한 조각 웃음이 입술 끝을 스치고, 겹겹이 절망의 커튼을 드리운 방안에서도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가는 빛줄기가 있다."
35년간 작업 활동을 이어온 지역 소설가 하창수가 '인생'을 출간했다. 저자는 전업 작가와 번역가로 살아오면서 문득 떠올랐던 생각과 문장들을 추려내 한 권의 에세이집으로 엮었다.
이 책은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 삶을 이해하기 위해 밤새 뒤척였던 자신의 젊은 날을 고백한다. '죽음이 목젖까지 차올랐던' 군 생활을 마친 뒤 거식증에 걸린 것처럼 아무 것도 먹지 못하던 저자를 구해준 건 스피노자의 '에티카'였다. 7개월간 그 한 권의 책을 서른다섯 번이나 읽으면서 하나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바로 "삶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후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 저자는 여러 권의 작품을 썼다. 삶을 규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이어졌으나, 그런 감정을 한 문장 한 문장씩 써 내려갈 수 있는 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명확함을 향해, 글과 글을 잇대면서 나아가고 있다. 신작 '인생'을 통해 선보이는 124편의 에세이 역시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저자는 오랜 시간 담금질해온 사유를 끄집어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관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고요한 문장력은 독자들이 곱씹어볼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낸다.
"세상에는 두 개의 슬픔이 있다. 하나는 나를 버리지 못해 생겨나는 슬픔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버림으로써 생겨나는 슬픔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둘을 모두 슬픔이라 하지 않는다. 앞의 것은 성찰이라 추켜세우고, 뒤의 것은 희생이라 떠받든다."
하창수 소설가는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단편소설 '철길 위의 소설가'로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H.G 웰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럴드 등 주요 영미작가의 소설을 다수 번역했다. 280쪽, 1만5천원.
댓글 많은 뉴스
앞치마 두른 'BTS 진', 산불피해지역 안동 길안면서 급식 봉사
"헌재 결정 승복 입장 변함없나" 묻자…이재명이 한 말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전문]
윤 전 대통령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기대 부응 못해 안타깝고 죄송"
'계엄, 1만명 학살 계획' 이재명 주장에 尹측 "이성 잃은 듯, 경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