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그동안 애 많이 썼다. 그럴 것 없다. 애초 우리는 바람이었다

최경규

나는 내가 괜찮을 줄 알았어요, 지금껏 살면서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위로한 적도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이런 걸까요? 60대 중반 한 여성분의 말이다. 떨리는 손, 건넨 차를 마시지도 못한 채,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옆을 못 보도록 가림막을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믿고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다면 '내가 겪는 고통쯤이야'라며 아픔을 참아왔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삶에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아이도 출가하고 집에 덩그렇게 혼자 있으면 눈물만 나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고, 난 왜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삶이란 연극에서 주인공으로 사는 것, 때로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모든 일이 나를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무대를 비추는 뜨거운 조명은 한여름 더욱 우리를 지치게 한다. 상담을 마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분에게 가장 효과적인 도움이 무엇일지 말이다.

상담시간 동안의 공감과 응원은 분명 도움이 될 테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과 이겨낼 힘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그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푸른 바다의 느낌이 나는 노트 한 권과 색감이 예쁜 파란 색 펜 한 자루를 선물로 건넨다. 마음속 정리되지 못한 찌꺼기를 버리고 새로움을 시작할 마법의 도구들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아픔들이 때로는 트라우마로 무의식의 상태, 동화 속 유령처럼 자주 나타난다. 그럴 때면, 꼭꼭 숨겨 놓았던 슬픔이 다시 썰물이 되어 감정의 수면 위로 올라오고, 턱밑까지 올라온 두려움에 우리는 숨조차 쉬지 못한다.

◆감정을 치유할 마음의 창문을 만들어야

그럴 때 나를 찾아온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슬픔을 애도할 시간을 가져보세요" 마음속 정화되지 못한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따스한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권해본다. 종이 위에 마음의 창문을 만들어보라고 한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도저히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을 때, 우리는 슬픔이 바람 되어 나갈 창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글쓰기를 권한다.

지난주 자신의 어머님을 떠나보낸 선배가 쓴 글이다. 장의차 안에서 퇴고도 없이 잠시 쓴 글이라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詩)라고 생각되었고,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선배는 이 글을 쓰고 슬픔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고 한다. 글이 상처를 애도하고, 마음의 슬픔을 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을 태우다>

염하고 눈물! 입관하고 눈물! 관 운반하면서 눈물!

화구로 들어가면서 눈물! 재 쓸어 담는 걸 보면서 눈물!

창호지로 재를 싸면서 눈물! 유분을 목함에 넣으며 눈물!

보자기에 싸여진 목함을 만지며 눈물

마지막 눈물은 이동 중인 영구차 안

가슴에 안긴 목함

감싸 안은 손끝에 느끼는 아직 남은 열기에 왈깍!

당분간 선제암 자주 가서 마음 놓고 우리라

합천군 용주면에서 우리라

남은 생은 울면서 살다가 나 또한 고통 없이 산화하기를....

그러다 산천 스치는 바람 속 먼지 되어 엄마 다시 만나리

그리고 안부를 여쭙니다

엄마 어디 계셨어요? 잘 계시지요?

엄마는 말한다

그럴 것 없다 애초 우리는 바람이었다. 잠시 구름 되어 너를 만나 뿌듯했다

그리고 다시 바람으로 돌아가 귓전을 펄럭이는 무언의 손짓들이 모두 너고 나다

구름처럼 살다간 시간 속에서 잠시 너를 만나 행복했다

또 다른 인연으로 우리 다시 만나자 그땐 좀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꾸나

그동안 애 많이 썼다. 고맙다. 다시 겸허히 살다 바람으로 다시 만나자

그래 그때까지 안녕! 사랑하는 내 새끼들아 금세 보고 싶구나

◆내 마음을 다독이는 글을 쓰자

흐르는 눈물만큼이나 선배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원(永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삶에 우리 부모만큼은 무병장수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욕심으로 우선순위의 뒷전에서 머물다, 정작 끝자락에 와서야 한탄과 자책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때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슬픔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만약 눈으로 감정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슬픔이란 구덩이에서 나올 수 있는 사다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울 때는 냉장고에 식혀두기도 하고, 차가울 때는 구들장 밑에 숨겨두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감정이라 해서 애써 외면하려 했던, 숨겨진 그 밑바닥의 슬픔까지 꺼낼 수 있는 시간은 필요하며 그 도구로서 글을 써보라 권한다. 무엇이라도 더 채우는데 익숙해진 요즘 세상에서 미니멀리즘, 단순하게 살 수 있는 생각, 정리할 시간은 필요하다.

비워보자, 자꾸 채우려 하지 말자. 비워둔 곳이 있으면 그대로 두자,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언가를 계속 채우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만, 세상을 담백하게 사는 일 중 하나는 바로 비움. 그리고 마음속 정화되지 못한 찌꺼기를 태우는 일.

제대로 비우기 위해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마음으로 쓰는 한 문장이 가슴에 울리는 순간, 홀로 있는 외로움에 쓰러지는 당신은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멀어져간 가족, 헤어진 사랑 그리고 하늘나라로 말없이 떠나버린 강아지에게도 이제는 보내줄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곳에 치유가 있다. 내 마음을 다독이는 글을 쓰는 시간, 오늘 한번 가져보자.

최경규

최경규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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