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틴(Daniel Levitin)이 제시한 것으로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40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고, 이를 토대로 새 도약을 준비 중인 이철규 트라코월드 대표이사다.
그는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트라코월드는 펌프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야전과 뒷골목에서 10만 시간 넘게 내공을 쌓은 결과다. 그 이면에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영 철학이 깔려 있다. 구미 '흙수저' 출신으로 고희가 멀지 않았음에도 도전과 열정을 식히지 않는 이 문제적 기업인은 방역의 신기원을 열어가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먼저 트라코월드에 대해 소개해달라?
▶지난 1986년 국내에서 불모지에 가깝던 플라스틱제 케미컬 펌프 분야 기술지원과 수입으로 시작했다. 여러 해 케미컬 관련 기자재들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연구개발을 통해 축적된 기술로 PCB, LCD, 반도체, 철강, 화학, 플랜트 및 환경에 이르는 관련 기자재 토탈 솔루션을 수립하게 됐다. 또 물류와 생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월마텍, 공장 설비 전문 회사인 리텍 등 기업의 대주주로서 전반적인 경영에 힘을 쏟고 있다.
-기업을 일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구미시 해평면이라는 시골에서 서울에 올라와 무역회사에 처음 취직했다. 하지만 당시 사장의 부당한 지시에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해고됐다. 이때 직접 경영이라는 것을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막상 기업을 하려고 보니 가진 게 없었다. 전 재산을 걸고 무작정 사무실을 차렸다. 트라코월드 전신인 삼화교역이다. 1988년부터 일본 월드케미컬사와 기술 제휴해 본격적으로 케미컬 펌프 제조 판매에 나섰다. 1993년에는 트라코월드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오산과 구미에 공장과 물류창고를 짓고, 참 부지런히 움직였다.
-해외에도 진출했는데?
▶미국, 캐나다, 일본 기업들과 정식대리점 계약을 맺고 있다. 특히 10년 전에는 중국에 진출했다. 당시 우리 기업들이 모두 철수할 때 우리는 나갔다. 주변 만류가 많았지만, 저는 임원들에게 '지금'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높은 기술력에 대한 수요가 존재할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10년 동안은 투자만 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 7년 동안 적자만 보니 사실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운이 좋았는지 3년 전부터는 매출이 발생한다. 다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에서 사업이 어렵지 않느냐고 묻는데, 우리는 득을 봤다. 중국 법인으로서 현지에서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점이,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오히려 가치를 키웠다. 끈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최근 기업들이 하나같이 어려움을 호소한다. 트라코월드는 어떤가?
▶당연하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저는 위기가 늘 기회로 다가왔다. 1997년 외환위기도, 2008년 금융위기도 극복하며 기회로 바꿨다.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시스템을 재정비했고, 현재는 대기업 못지않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장 업무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가 가능할 정도다. 지금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잘 이겨내고 있다.
-난관을 극복하는 비결이 있는지?
▶방법을 찾지 말고, 베스트를 찾는 것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방법을 고민하는 것보다 가장 최선의 결과에 집중한다. 이유는 고객이 베스트만 인정해서다. 37년을 경영일선에서 보냈지만, 지금까지 롱런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또 저는 위기 상황이 신이 저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모두 어려운 과정이지만,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제가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이사는 펌프를 넘어 방역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근 그동안의 기술과 노하우를 쏟아부은 '바이킬러'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공기와 표면을 빠르게 동시에 살균하는 퀵 하이브리드 방역기다. 공기와 표면을 함께 살균하려면 입자가 너무 작아도, 커서도 안 된다. 세계보건기구가 그 기준을 10~30마이크론(μm)으로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선 고압 펌프와 특수 모듈이 필요하다. 대부분 고압펌프는 오일 누수 문제가 존재한다. 트라코월드는 세계적인 펌프 기술을 바탕으로 반도체 세정 등 초정밀 분야 노즐을 제어하는 기술 등을 갖고 있고, 이를 토대로 코로나 방역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문제는 기득권의 벽이 너무 높다는 데 있다.
-정부를 향해 할 말이 많을 듯한데.
▶하하. 내 얘기만 하기는 그렇고…. 정부 예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썼으면 한다. 국고가 투입될 때는 개혁과 변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취업 활동 몇 번에 구직활동비를 줄 게 아니라 취업을 원하는 이들이 진정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예산을 써야 한다. 최근 많은 이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에 나서고 있다. 이들 중에는 재취업을 원하는 비율도 높다고 한다. 도전 후에는 다시 산업 일선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일자리 생태계도, 산업 생태계도 건강해지지 않겠나?
-활력이 넘치는 데 건강 비법을 귀띔해준다면?
▶오랜 원칙이 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꼭 잠자리에 든다. 30분 동안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고, 6시에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골프를 자주 하는 편인데 제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주로 친다.
-고향에는 더러 가시는지?
▶모임이나 행사가 있을 때. 얼마 전 해평중학교에서 허락해줘서 학교 체육관을 빌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식사를 모시고, 선물도 드리고. 500분 정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700분이 찾아주셨다. 급하게 음식과 선물을 추가로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것을 보니 너무 뿌듯했다.
-창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한다면?
▶꿈을 갖고, 다른 관점에서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가 성공 욕구를 갖고 있을 터다. 더 잘 살고 싶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고. 그런데 차이를 누리려면 차이를 누릴 수 있는 생각과 행동, 노력이 필수적이다. 결코, 적당한 생각과 행동으로는 차이를 만들 수 없다. 당장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부단히 꿈을 위해 달려가길 바란다.

■ 이철규 회장과 트라코월드
이철규 회장은 1957년 구미 시골에서 태어났다. 지역의 상고를 졸업하고, 맨손으로 상경했다. 무역회사에서 쓴 세상을 경험한 뒤 전 재산을 투자해 '삼화교역'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무명이라는 설움을 이겨내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1988년부터는 일본 월드케미컬사와 기술 제휴를 통해 케미컬 펌프 제조 판매에 본격 뛰어들었다. 1993년 현재의 트라코월드로 사명을 변경하고 사업을 강화했다.
사실 이 대표이사의 가방끈이 길지는 않다. 사업 초년병 시절 '영어도 잘 못하면서…"라는 형수의 비아냥은 그의 승부 근성을 자극해 일본어를 유창하게 익히는 계기가 됐고, 이후 일본통(通)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토대가 됐다.
연구개발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이 대표이사는 기술을 축적해 2007년에는 국제표준인 ISO9001 인증을 획득하고, 2009년 케미컬 펌프 국산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식경제부장관상 기술개발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펌프 노하우와 기술을 집약한 바이킬러를 선보이며 방역 사업에 진출했다. 트라코월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모멘텀이다. 애향심이 특별한 이 대표이사는 구미 해평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과 재경해평향우회장을 역임했다. 꾸준한 기부와 봉사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