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돌아온 ‘유해진표’ 여행 예능…tvN ‘텐트 밖은 유럽’

유럽 감성에 된장국 한 스푼…적당한 부조화로 웃음 줘
엔데믹 시기 답답한 마음 뚫어주는 시원한 풍광에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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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텐트 밖은 유럽'의 한 장면. tvN 제공

코로나19의 엔데믹 분위기가 가져온 예능 프로그램의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여행이 재개됐다는 것이 아닐까. tvN '텐트 밖은 유럽'은 마치 그 신호탄 같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다. 유럽, 스위스의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풍광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엔데믹 속 해외로 간 여행 예능

코로나19가 가장 큰 타격을 준 분야가 여행업계라는 걸 떠올려 보면 한때 여행을 소재로 펄펄 날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간 겪었던 난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나영석 사단이 전면에서 이끌었던 여행 예능들은 그래서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국내를 전전했고 그것도 되도록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꾸려졌다. 무인도 같은 섬이 때 아닌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배경으로 떠오른 건 그래서다.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유해진과 차승원이 죽굴도라는 무인도에 들어가 온전히 섬 하나를 그들의 앞마당이자 뒷마당으로 쓴 바 있고, '윤스테이'는 윤여정을 위시한 이서진, 정유미, 박서준, 최우식이 해외가 아닌 국내 구례 쌍산재 고택을 배경으로 사전에 코로나 검사를 마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초대해 한옥에서의 하룻밤과 한식의 맛을 선사하는 광경을 흐뭇하게 잡아낸 바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코로나19 시국이 만든 한계 상황에 대한 역발상이 오히려 힘을 발휘한 사례지만, 실상 여행 예능은 거의 2년 넘게 해외로의 발길이 끊긴 채 멈춰 서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지금은 다시 오미크론이 퍼지면서 코로나19 상황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올해 4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엔데믹 분위기에 예능 프로그램들도 여행을 재개했다. 나영석 사단이 만든 '뿅뿅 지구오락실'이 그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서유기'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대신 젊은 여성 출연자들을 세워 색다른 스토리와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뿅뿅 지구오락실'은 벌써 제목부터 해외여행을 겨냥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오락실 삼아 게임을 해보겠다는 의지가 깃든 제목이다. 실제로 오랜만에 태국 방콕으로까지 날아간 이 프로그램은 그 곳의 이국적인 풍광과 판타지를 자극하는 리조트의 풍경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로망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제 시작한 '텐트 밖은 유럽'은 유럽 그 중에서도 만년설과 아름다운 호수가 한 풍경에 담기는 스위스로 날아갔다. 여행 예능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눈이 시원시원해지는 풍경들이 첫 회부터 펼쳐지며 시청자들을 그 여행에 참여시켰다. 저 멀리 만년설이 덮인 마테호른의 위용이 비현실적인 압도감으로 병풍처럼 펼쳐지고, 빙하가 녹아 흐르는 옥색의 호수에는 한가롭게 수영을 하는 이들이 보인다. 밤 아홉시가 가까이 되도 여전히 밝은 빛이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고개를 들기만 해도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곳. 예능적인 재미를 굳이 만들려 할 필요 없이 그 광경만을 계속 쳐다보기만 해도 좋은 시간이 펼쳐진다. 여행 예능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방구석 여행'의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그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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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텐트 밖은 유럽'의 한 장면. tvN 제공

◆유해진에 진선규‧박지환‧윤균상

'텐트 밖은 유럽'은 빵빵 터지는 자극적인 웃음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어딘가 따뜻하고 훈훈한 느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유해진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정서 때문이다. 처음에는 뭐가 재미있을까 싶지만 자꾸만 들여다 보다 보면 조금씩 특유의 '아재미'와 유머에 스며들게 만드는 유해진의 힘을 우리는 이미 '삼시세끼' 어촌편 물론이고, '스페인하숙'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겪어 본 바 있다. 차승원과 합을 맞춰온 유해진은 끝없이 아재개그를 던지기도 하고, 특유의 손재주로 무언가를 뚝딱 뚝딱 만들기도 하며 때론 상황극을 연출하면서 특유의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주기도 한 바 있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에서 진선규, 박지환, 윤균상과 함께 스위스 여행을 이끄는 유해진은 일종의 리더이자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 이미 그곳 여행이 익숙한 유해진은 자신이 좋았던 경험들을 동생들에게도 보여주고 체험해주고픈 마음을 담아 모든 걸 계획했다. 첫날 캠핑장에서 텐트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바로 앞에 펼쳐지는 산들의 파노라마는 그래서 감탄하는 동생들을 보며 흐뭇해하는 유해진의 미소가 덧입혀진다. 그저 풍광을 소개하고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 담긴 맏형의 마음이 따뜻한 정서로 얹어지니 여행은 더 푸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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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텐트 밖은 유럽'의 한 장면. tvN 제공

자신은 이미 체험한 패러글라이딩을 진선규와 윤균상에게 하게 해주고, 자신은 온 몸이 땀이 흥건할 정도로 조깅을 즐기는 유해진은 생애 첫 패러글라이딩을 놀라운 풍광 속에서 체험하고 돌아온 동생들에게 연실 '빙글빙글'(낙하산으로 빙글빙글 돌면 내려오는 것) 체험의 짜릿함을 묻는다. 또 자신이 조깅을 하고 그 시원한 물에 세수를 했던 호숫가로 동생들을 데려가 굳이 그들을 물에 빠뜨려 그 곳에서의 수영을 경험하게 만든다. 자신이 해보니 너무나 좋았던 경험들을 동생들에게 하게 해주고픈 마음과, 그걸 경험하고 형 덕분에 이런 걸 다 해본다며 흡족해하는 동생들의 마음이 교차되며 여행 특유의 유대감이 만들어진다.

예능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진선규는 유해진과 격의 없는 티키타카로 웃음을 만든다. 밝을 때보다는 어두울 때 더 빛난다(?)며 자신까지 포함한 외모 개그를 툭툭 던지기도 하고 막내 윤균상과 형제 같은 케미를 보여준다. 영어도 익숙하지 않고 캠핑도 패러글라이딩도 또 수영도 익숙하지 않은 진선규는 특유의 소년 같은 눈망울로 해맑게 웃으며 그 '첫 체험'이 주는 짜릿함을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막내 윤균상을 빼고 유해진부터 진선규 그리고 박지환까지 선 굵은 느와르가 어울릴 것 같은 출연자들이 소년처럼 되는 광경은 여행이 주는 묘미가 무엇인가를 잘 드러내준다. 본연의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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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텐트 밖은 유럽'의 한 장면. tvN 제공

◆텐트, 유럽, 출연자의 조화

2회에서 유해진이 동생들을 데려간 호숫가는 그곳 현지인들이 찾아와 여유로운 망중한을 즐기는 곳이다. 그곳을 찾은 진선규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그냥 여유롭다. 뭘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게 익숙하신 분들이야 여유롭게. 왜냐면 우리는 오면은 어떻게든 놀고, 여기서 북적북적한 것도 많고, 뭘 해야 된다는 것도 많은데…." 그건 이곳에서의 여행이 우리와는 다른 저들의 무엇을 발견하고 느끼게 할 것인가를 말해준다. 그건 여유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것.

그래서 소리로 가득 채워지기보다는 어딘가 비워져 있는 조용함이 어울릴 것 같은 이 공간에서 출연자들이 멍하니 풍경들을 보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힐링을 준다. 그런데 이 전형적인 유럽의 풍경과 정서 속에서 이를 툭 깨고 나오곤 하는 출연자들의 더할 나위 없는 한국적인 모습들은 적당한 부조화로 예능적인 웃음을 준다. 첫 캠핑장에 도착해 컵라면 하나로 저녁을 대충 챙겨 먹으며 "며칠 동안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라고 말하는 진선규의 모습이 그렇고, 현지 슈퍼에서 만난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삼겹살에 상추를 구입하고 좋아하는 유해진과 윤균상의 모습이 그렇다. 그런 모습에서는 유럽의 감성에 된장 한 스푼을 넣은 듯한 이질적이지만 어딘가 어울릴 것 같은 이 여행 예능 특유의 맛이 풍겨난다.

과연 엔데믹 분위기 그대로 앞으로도 여행 예능은 우리를 전 세계 곳곳으로 인도해줄까. 아직 섣부른 기대일 수 있지만, 적어도 '텐트 밖은 유럽'이 그간 떠날 수 없어 답답했던 우리의 속을 뻥 뚫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팬데믹 속에서 오히려 더 커진 떠나고픈 마음을 대리해주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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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텐트 밖은 유럽'의 한 장면.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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