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NN 서울발 기사에서는 나이를 먹지도, 지치지도 않는 가상 인간 로지를 비중 있게 소개하며, 한국에서 가상 인간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맥락과 성형 열풍을 보도했다. 늙지 않는 존재에 대한 동경은 '염색 샴푸' 열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이 듦의 상징인 흰머리를 감춰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정기적으로 염색을 하는 다수의 중장년층에게 염색 샴푸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지켜보며 필자는 JTBC 인기 음악방송 '히든싱어'가 떠올랐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와 그 가수의 목소리부터 창법까지 완벽하게 재연하는 모창 능력자가 장막 뒤에 숨어 노래 대결을 하는 포맷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실상은 '전성기 시절을 흉내 낼 수 있는 모창 능력자'와 '현재의 나이 든 진짜 가수의 목소리'를 대결하게 만든다. 전성기가 지난 진짜 가수의 나이 든 목소리는 전성기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모창 능력자의 젊은 목소리를 이기기 어렵다.
시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시청자는 모창 능력자와의 대결에서 진짜 가수가 먼저 탈락하는 장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진짜 가수는 무대에 서기 위해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는 '젊은 시절의 목소리'를 '연기'해야만 한다. 진짜 가수가 자신의 젊음을 연기해야만 무대에 남을 수 있는, '영원한 22살'이라는 설정값을 갖고 등장한 가상 인간 로지를 열망하는, 염색 샴푸가 인기를 끄는, 이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늙음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항노화 제품이 계속해서 출시되고, 외양을 가꾸는 데 모두가 심혈을 기울인다면 언젠가 우리는 '노인이 없는 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노인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인류학자 레오 시몬즈는 원시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기후가 좋지 않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사회일수록 노인들에 대한 폭행, 살인 및 노인 유기 등이 많이 나타났다. 과거에는 열악한 삶의 조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을 사회에서 지워 버렸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노인들 스스로가 노인임을 거부하고 있다.
'나이 든 나'를 자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태는 현재의 자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할 수밖에 없는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나이 듦을 삶의 영역에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삭제해 버리면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이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그리고 종국에 맞이할 죽음의 모습에 대해 다음 세대와 함께 고민하고 탐색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비현실적인 외모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유한할 수밖에 없고,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여 이에 맞는 돌봄 체계와 복지 체제를 다지는 게 필요하다. 그리하여 노인이 되어서도 나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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