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우울한 광복절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독립운동이 1945년에 끝나지 않고 그 뒤 공산 세력과의 투쟁 이후의 건국, 그리고 경제성장과 산업화와 민주화로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건국이란 일부에서 말하는 1948년 8월 15일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6·25 휴전 이후를 말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3·1운동은 물론 아닌 것 같다. 이는 미국을 좋아하는 윤 대통령이라면, 미국의 건국기념일이 1776년 7월 4일이고, 그날은 3·1운동에서처럼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날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이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려 이상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미국의 그날은 지배국인 영국에서 독립한 날이 아니라, 독립을 선언한 날이고, 독립이 국제적으로 승인된 것은 그 뒤 8년이 지나서이다.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승인된 것은 광복 이후 3년여가 지난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를 통해서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이 주장하는 건국절은 12월 12일이어야 하지 않는가.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면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을 '담대한 구상'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새롭거나 현실성이 있는 구상으로 전혀 들리지 않는다. 지난 정권들도 수없이 같은 소리를 되풀이했지만 언제나 공허하게 끝난 것 같아서다. 그런 획기적 개선 운운하는 미끼로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리라고는 삼척동자도 생각하지 못할 게 아닌가. 더 이상한 것은 북한 이상으로 우리의 담대한 적이었던 일본에 대해서는 최소한 36년간의 침략을 철저히 반성한다면 담대하게 용서한다는 정도의 담대한 구상을 내놓기는커녕, 공산 세력에 맞서기 위해 힙을 합쳐야 할 이웃이니 관계 개선을 빠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북한에 대한 담대함과는 달라 황당하기 짝이 없다.

여하튼 즉각 일본에서는 맞장구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가령 일본에서 엄청난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모 신문은 "일본을 악역(敵役)으로 삼은 역사관에서 탈각하는 자세를 선명하게 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극찬을 늘어놓았다. 특히 일본 강제징용과 전시성폭력(위안부) 피해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런 논조의 신문은 하나같이 국정 지지도가 낮은 윤 대통령이 과연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표하면서,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위자료 배상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는 등의 내정간섭적인 훈수를 두었다. 참으로 나쁜 이웃이다.

그런 신문들은 일본의 소위 우익지들이다. 일본에도 우익지가 아닌 신문들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한국 문제에 대해서는 좌우익에 큰 차이가 없다. 윤 대통령 광복절 연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본에서만은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엄청 높을 것 같다. 게다가 광복절 전날의 위안부 기림 식전에 윤 대통령이 불참하고, 광복절날 일본 수상 등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표한 예는 멈출 수 없는 관습이라고 한국 대통령실 고관이 말했다는 보도와 함께여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신사 참배 일본이 자유를 위한 이웃이라고는 일본인 자신들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일본에 살 때 경찰서의 범죄인 조사서의 맨 위 세 개의 작은 칸에 일본인, 외국인, 조선인이라는 국적란이 있었다. 조선인을 특별히 존중해서가 아니라 국내인도 국외인도 아닌 자들로 범죄 발생률이 높아서 그렇게 구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조선인의 발음이 조센징이고 그 말은 일본에서 엄청난 경멸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시대가 변했으니, 또는 일본은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이니, 공산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등의 이유로 일본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 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고 일본이 과연 강대국인지도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좀처럼 쉽게 벗할 수 있는 이웃으로 삼기도 어렵다. 일본에 좌·우파가 있다고 하지만, 조선 침략 시작 때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지금까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는 단 하나, 국익뿐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가질 태도도 철저한 국익 중심이어야 한다. 그러니 함부로 자유 이웃이니 예의니 관습이니 운운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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