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덕다이브

이현석 지음/ 창비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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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다이브(이현석 지음/ 창비 펴냄)
덕다이브(이현석 지음/ 창비 펴냄)

현직 의사인 이현석 작가의 첫 장편소설 '덕다이브'가 출간됐다. 해양스포츠인 서핑을 소재로 삼아 산뜻하게 읽힐 것 같지만, '태움'이라 불리는 의료계의 괴롭힘 문제를 다뤄 가볍게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책의 배경은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인 서핑캠프다. 태경은 발리에 온 지 3년 된 서핑강사다. 어느 날 캠프 홍보를 위해 방문한 웰니스 인플루언서 '민다'와 만나게 된다. 그녀의 본명은 다영. 과거 태경이 간호보조인력으로 일했던 건강검진센터의 간호사이자 태움의 피해자였다.

태경과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다영은 실수가 잦은 직원이었다. 여기에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고 4년제 대학을 나온 다영의 배경은 책임간호사의 심기를 더욱 자극했다. "쟤는 뭐가 모자라서 여기까지 왔다니?" "너 그냥, 내일부터 출근하면 바로 탈의실로 가. 응?"

태경은 그저 '방관과 동조의 경계 위'에서 꾸준한 괴롭힘을 지켜봤을 뿐이다. 가끔은 다영을 향한 비웃음에 함께하면서, 또 가끔은 '내가 아닌 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와 '다음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면서 말이다.

시간이 흐른 뒤, 다영을 다시 만나게 된 태경은 외면하고 싶던 사실을 직시한다. 방관자는 가해자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태경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기만이 가리려고 했던 사실은 방관 또한 가해였다는 점.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보아도, 결코 가려지지 않는 사실은 그것이 비겁하디 비겁한 가해였다는 점."

소설은 이런 괴롭힘을 개인의 일탈이 아닌 노동환경의 문제로 보며, 문제의식의 폭을 넓힌다.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의 '태움'은 단순히 의료계만의 악습이 아닌, 우리 사회의 모든 일터에서도 볼 수 있는 단면이기도 하다. 소설은 '사람을 연료로 태워가며 돌아가는 이 해괴한 곳'에서 발버둥치는 모든 이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물 마실 시간조차 없다고 출근하자마자 머그컵에 부은 맹물부터 마시던 우리.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어 방광염을 달고 살던 우리 (중략) 가짜 공복감이라는 걸 알면서도,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허기에 허덕이던 우리."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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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일터는 낙오자를 만든다. 헌신이나 희생, 사명감 따위의 가치가 낙오자를 향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조차 착취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소설은 말한다. 결국 다영은 이러한 시스템이 가한 폭력에 '쓰러져 버리는 대신 끝내 회복하여 삶으로 복귀한' 생존자이기도 했다.

짜릿한 서핑의 순간에 대한 사실적인 문장을 읽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해양스포츠물로서의 미덕도 충분한 것. 실제로 서핑을 취미로 삼고 있는 작가는 경험자만이 쓸 수 있는 생생한 묘사로 서핑의 매력을 백분 전달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덕다이브'는 바늘을 꿰는 것처럼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가 타지 못할 파도를 피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보드에서 몸을 일으켜 파도를 타는 '테이크오프'만이 서핑의 전부는 아니듯, 우리를 둘러싼 가혹함도 반드시 맨몸으로 받아낼 필요는 없다. 300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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