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몸이 먼저 움직이게 하는 사람

이재근 신부

이재근 신부
이재근 신부

내가 아홉살이던 해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저녁 부모님이 잠시 외출하셨다. 부모님이 외출 전 나에게 당부했던 한 가지는 "절대 선풍기 틀어놓고 잠들지 마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다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외출하신 후 나는 가장 먼저 동생을 거실로 옮겼다. 그때 동생은 여섯살이었는데, 혹시 선풍기가 있는 방에 같이 있다가 둘 다 죽으면 부모님이 두 배로 슬프실 테니까 동생을 선풍기가 없는 거실로 옮겨서 자도록 했던 것이다. 동생은 죽더라도 시원한 선풍기 밑에 있고 싶다했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됐다. 거실에 있던 동생은 더위에 지쳐 잠들었다.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부모님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나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고 잠시 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아버지셨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께서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셨다. 부모님이 돌아와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셨고, 옆집에 부탁을 해서 우리집에 전화를 했지만 계속 전화벨만 울렸다고 한다.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신 아버지께서는 옆집 베란다 창문 밖으로 나가서 우리집 베란다로 건너가려 하셨다. 문제는 6층인 우리집 베란다 창문이었다. 창문이 잠겨져 있다면 우리집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밑으로 추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집 베란다 창문으로 발을 옮기셨고, 다행히 창문이 열린 덕분에 무사히 집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었다. 그리고는 선풍기 바람을 쐬며 잠들어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아버지께 죄송하고 고맙다. 만약 그때 아버지께 안좋은 일이 생겼더라면 나는 한평생을 후회 속에 살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는 더욱 한이 맺혔을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지금도 내 곁에서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다.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한 후 최선의 행동을 한다. 생각보다 몸을 먼저 움직이면 '성급하다', '신중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원칙이 깨지는 순간도 있다. 바로 소중한 사람 앞에서다. 특히 소중한 사람이 위험에 빠져 있다면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몸이 먼저 움직인다.

지금 여러분 곁에도 몸을 먼저 움직이게 하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 바로 가족. 늘 붙어 있기에 자주 싸우고 소중함을 잊기도 하며 상처되는 말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들이 위험에 처한다면 몸이 먼저 움직일 것이다.

가족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가족 안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 마지막 휴가철인 8월이 가기 전에 가족과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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