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사이비 이념 갈등 시대는 끝나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우리는 흔히 정치 이념을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로 나눈다. 로웰(A.W Lowell)은 보수를 기존 체제에 만족하면서 개혁이나 혁명을 비관하는 이념으로, 진보를 체제나 현실에 불만을 갖고 개혁을 낙관하는 이념으로 보았다. 그는 정치공동체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다수의 지배적 균형을 이룰 때 공동체는 안정이 보장된다고 보았다. 보수가 극우화되면 역사를 거스르는 반동이 되고, 개혁이 급진화될 때 좌익 독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프랑스 대혁명 후 국민의회가 소집되었을 때 기존 질서를 옹호하자는 의원이 회의장 우측에 많이 앉아 우익이 되었고, 개혁이나 혁명을 선호하는 의원이 좌측에 앉아 좌익으로 명명되었다. 새가 양 날개로 날듯 좌·우익이 균형을 이룰 때 정치공동체는 안정되고 발전된다.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심각하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은 진짜가 아닌 사이비 이념 갈등이 많다. 우리 사회에는 보수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강경 보수 및 극우에 가까운 사람이 많고, 진보 역시 맹목적 좌익에 가까운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사이비 보수는 진보를 '좌빨'로 낙인찍고, 강경 진보는 보수를 '수구꼴통'으로 매도한다. 사이비 이념 갈등은 자기 진영의 입장 옹호를 위해 상대를 맹목적으로 비판, 비난, 거부하는 편 가르기로 표출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그간의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오늘날의 네거티브 정치, 팬덤 정치, 진영 정치도 결국 이러한 가짜 이념 갈등의 결과이다.

이러한 가짜 이념 갈등은 이 나라 정치뿐 아니라 시민 사회 곳곳에도 깊숙이 침윤(浸潤)되어 있다. 우리 생활의 필수품인 카톡, 유튜브 등 SNS에는 진실이 아닌 가짜 정보와 메시지가 범람하고 있다. 이로 인한 공동체의 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혈연 공동체인 가족 모임에서도 동창회 등 친목 모임에서도 이념 갈등으로 주먹이 오갔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정치적 메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싸우다 톡방 탈퇴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정당 간 정권 교체가 두 번이나 이루어진 이 나라 정치에서도 상호 인정치 않고 비난하는 파쟁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 정치의 불안하고 참담한 모습이다. 사이비 이념 갈등을 우리 정치의 지역과 세대에까지 접목해 갈등 구도를 증폭시켜 한국 정치를 부정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있다.

어쩌다 우리 정치사회가 이런 가짜 이념 갈등의 온상이 되어 버렸나. 어떤 사람은 반도 국가인 이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원인을 찾는다. 어떤 학자는 조선조 당쟁의 역사가 이념 갈등의 뿌리라는 주장도 한다. 일제로부터 해방과 분단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이 이념 갈등을 증폭시킨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정부 수립 후 두 차례의 군부 쿠데타와 반독재 민주화 과정은 사이비 이념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상호 불신과 대결로 이어진 거부의 정치는 극한적 대결 구도로 연결되고 있다. 오늘도 당파 이익에 집중된 정치적 탈선이 시민사회의 이념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이러한 정치적 대결이 시민사회까지 분열시켜 불안하고 불행한 정치의 온상이 되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도 이제 사이비 이념 갈등은 종식시켜야 한다. 극단적 보수와 극단적 진보가 추구하는 꿈은 실현할 수 없는 정치 현실이다. 좌·우 극단 강경세력의 좌절은 정치적 허무주의 지점에서 만나 후회한다고 한다. 해법을 찾자면 우선 좌·우 편향의 사이비 이념을 전파하는 톡방의 가짜 뉴스부터 정화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자정 능력이 없으면 강력한 법제라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 편 가르기 언론도 시민사회의 갈등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사실에 근거한 언론의 정론직필만이 답이다. 좌·우로 분열된 시민단체에도 책임이 많다. 가장 근원적인 해법은 우리의 정치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정치인들은 아직도 유권자들을 선거 승리의 수단으로만 삼고, 시민사회의 사이비 이데올로기는 이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이들이 정치인들의 대리전을 치르는 형국이다. 우리도 이제 좌·우 편향 사이비 이념에 휘둘리지 않는 합리적인 정치문화를 정착시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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