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닐 때부터 우리 주변 현충시설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유명한 현충시설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내 주변에, 우리 학교 근처에 이런 의미 있는 역사 유적이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생 때 모르면 성장해서도 모릅니다."
광복절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 대구 동구 효목동 조양회관(朝陽會館)에서 만난 변재괴 광복회 대구시지부 사무국장은 아쉬운 듯 열변을 토했다. 대구의 대표적 근대 항일 유산인 조양회관이 건립 10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순간을 맞았음에도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였다.
변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자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대구, 더 좁게는 우리 동네에 있는 현충시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서울 서대문형무소나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에는 다녀왔는데 정작 차로 30분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대구 현충시설은 몇 번이나 찾아갔을까.

실토하자면 조양회관이 있는 동촌유원지 주변 번화가를 수백 번 찾았으면서도 이토록 의미 있는 유산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 심지어 기자의 거주지는 대구 동구다. 같은 구(區)에 속한 현충시설마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보훈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기자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날 찾은 조양회관은 광복절이 사흘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그저 한적했다.
"창틀 하나, 바닥 목재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내부는 낡아 삐걱거렸고, 애국지사들이 기증한 항일운동 유산들이 전시된 중앙 홀은 관리 상태가 양호했지만 오랫동안 리모델링이 이뤄지지 못한 탓에 마치 1990년대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올드한 분위기였다.
시설의 중요도에 비해 시민들의 관심은 현저히 떨어지고, 당연히 대구시 예산 편성에서도 후순위로 밀려 전시시설 개선이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상균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은 "대구에서는 신암선열공원과 함께 가장 의미 있는 현충시설인데도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고 안타까워했다.
왜 그럴까. 물론 전국적으로 유명한 현충시설과 비교했을 때 다소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크 투어리즘'(비극적 역사를 되돌아보는 여행)의 측면에서 유명한 곳을 찾는 심리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충시설의 의미가 다크 투어리즘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만들어진 게 현충시설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지역에서, 내 주변에서 일어난 희생을 기리는 것이야말로 더 큰 보훈의 꽃을 피우기 위한 풀뿌리인 셈이다. "가까이 있는 현충시설부터 사랑하고 아껴야 진정 나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국가보훈처는 지역별, 동네별로 우리 주변의 현충시설을 찾아볼 수 있도록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마련해 뒀다. 올해 6월부터는 휴대전화 앱을 통해서도 비대면으로 각지의 현충시설을 관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자는 이번 주말 대구 수성구에 있는 '육군 공병5기 6·25 참전 기념비'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설령 그 시설이 대단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거나 유명한 관광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행적을 기리고 지켜 가려는 '현충'(顯忠)의 의미에는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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