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이 점점 사라지게 된 건 핵가족화되어 해체되는 가족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 시대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모범가족'이 내세운 제목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리 시대에 가족은 어떤 현실 앞에 놓여 있을까.
◆넷플릭스 범죄물의 계보 '모범가족'
범죄와 가족. 어딘가 어울리지 않을 법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이미 '대부' 같은 작품이 마피아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바 있지 않던가. 하지만 최근 국내외를 통틀어 등장하고 있는 범죄와 가족의 서사는 과거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는 게 사실이다. 거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들이 등장하고,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위기에 처한 가족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범죄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중 단단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작품 '브레이킹 배드'는 단적인 사례다. 드라마에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가져, 돈 들어갈 데는 많고 자신 또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중년의 화학교사 월터가 등장한다. 그는 화학교사로서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순도 높은 마약을 제조하게 되면서 범죄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건 모두 가족들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 가장은 가족들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역전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게 된다.
'모범가족'은 바로 이 작품에 영향을 깊게 받은 느낌이 역력하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고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 박동하(정우)는 정교수가 되기 위해 이사장에게 뇌물을 썼지만 그 이사장이 성범죄로 기소되는 바람에 모든 걸 날리게 될 위기에 처했다.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기까지 한 박동하와 이미 소원해진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사춘기인 딸은 툭하면 사고를 치고 다니는 사고뭉치다. 유일하게 밝고 똑똑한 막내아들이 그나마 이 가족에서 가장 '모범적'이라고 보이는데, 그 아들은 선천적인 심장병을 갖고 있다. 이미 박동하의 가족은 범죄에 맞닥뜨리기 이전부터 붕괴 직전이었던 것.
바로 그런 절망의 끝에 선 박동하 앞에 유혹적인 범죄가 등장한다. 사람이 죽어 있는 사고 차량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돈 다발을 발견한 것. 박동하는 유혹에 못 이겨 돈을 챙기고 사체마저 유기한다. 그런데 이 일이 박동하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 전체를 더 큰 위기 속으로 빠뜨린다. 잃어버린 돈을 찾기 위해 마약조직이 그의 가족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또 그 마약조직을 소탕하려는 마약수사팀장 강주현(박지연) 역시 그들을 예의주시한다. 이제 박동하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저들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하고, 나아가 가족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저들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모범가족'의 박동하라는 위기의 가장이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를 닮았다면, 박동하가 마약조직에 붙잡혀 마약운반책을 해야 하는 이야기는 역시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던 '오자크'를 연상케 한다. 마약조직에 연루되어 그 검은 돈을 세탁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죽을 위기에 처한 회계사 마티가 호수가 있는 시골마을 오자크로 내려와 갖가지 방법으로 돈 세탁을 하는 이야기다.
이처럼 '모범가족'은 최근 넷플릭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족이 가담하게 되는 범죄물의 계보를 잇고 있다. '브레이킹 배드'나 '오자크'도 그렇지만 평범한 인물이 마약범죄의 세계에 빠져드는 이야기는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 같은 작품처럼 넷플릭스에 트렌드처럼 자리한 범죄물이 됐다.
◆범죄 모험담과 가족 서사
사실 이런 류의 범죄물들이 가진 매력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범죄의 깊은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 모험담에서 비롯된다. '브레이킹 배드'도 '오자크'도 처절한 가장의 생존기가 그려지는 건 맞지만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수십 억대의 돈이 움직이는 그 세계의 모험을 '안전하게' 즐기려 한다. 물론 이 스릴 넘치는 짜릿한 모험담의 끝에는 거꾸로 '평범한 삶'의 소중함이 다시 고개를 들지만.
'모범가족' 역시 이러한 박동하의 모험담(?)이 펼쳐지지만 아무래도 우리네 정서에 맞게 좀 더 가족 서사에 집중한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가족(패밀리)이 세 부류라는 점이다. 하나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박동하 가족이고, 나머지 두 가족은 일종의 패밀리라 지칭되는 마약조직과 경찰조직이다. 그런데 박동하 가족만 붕괴의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마약조직에서 충성을 다해 왔지만 버려질 위기에 처한 마광철(박희순)이나, 이 사건을 추적하며 사랑하는 동료가 언더커버로 들어가 살해당하기까지 했지만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버리려는 경찰 조직(심지어 마약조직과 연루된 부패형사까지 있는)에 분노와 회의감을 느끼는 강주현은 저마다의 패밀리 속에서 박동하와 다르지 않은 위기를 느낀다. 즉, 드라마는 세 부류의 가족(패밀리)이 모두 처한 위기를 꺼내놓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세 사람의 선택들을 들여다본다.
여기서 '모범가족'이 가진 차별적인 요소들이 등장한다. 마약조직은 누가 이권을 독차지 하느냐 같은 욕망 때문에 붕괴되어가고, 경찰조직 역시 동료의식 없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 속에서 붕괴된다. "가족이라는 게 참 웃겨. 원수처럼 으르렁거려도 절대 돌아서진 않거든. 우린 경찰 가족이라면서 맨날 뒤통수치고 배신 때리고 그러잖아. 가족 아니야 우리. 걔네는 진짜 가족인 거고." 강주현의 일갈은 '모범가족'이 비교하고 있는 가족들(패밀리) 중 누가 진짜 가족인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버티고 이겨내는 우리 시대 가족
사실 가부장적 가족 체계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적인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 현재의 우리들에게 가족의 의미는 과거와는 달라졌다. 가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우선 개인이 더 중요하고 개인이 온전히 행복해져야 가족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게 지금의 가족관이다. 그래서 가족이란 대놓고 드러나는 어떤 공동체라기보다는, 평시에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다가도 어떤 위기상황이 닥치면 힘을 발휘하는 그런 공동체로 여겨진다. 한때 회사 같은 조직에서도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가족인 양 포장되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각각의 남으로 존재하면서 어떤 프로젝트 앞에서 업무적으로 끈끈한 동료애를 드러내는 그런 시대에 들어온 것.
'모범가족'은 이런 시대에 호명되는 가족상을 그리고 있다. 그건 좋을 때보다는 힘겨울 때 더 빛을 발하고 가치를 드러내는 가족이다.
"아빠. 내가 계속 아픈 게 가족들한테 좋을까요? 아니면 빨리 낫는 게 좋을까요? 내가 아프면 온 가족이 다 모이잖아요." 아들 현우가 박동하에게 하는 이 말 속에 그 가족상의 특징이 담겨 있다. 박동하의 가족은 마약조직의 위협으로 인해 붕괴되기보다는 오히려 결속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본래 무너져 내리고 있던 박동하의 가족이 이러한 위기 속에서 다시금 가족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모범가족'은 넷플릭스 범죄물의 익숙함이 깃들여진 작품이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 '가족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더함으로써 한국적인 해석을 차별점으로 넣고 있다. 충분히 빠져서 볼 수 있는 몰입감 높은 느와르 작품에, 가족드라마의 색깔이 얹어져 만들어낸 독특한 색깔이 아닐 수 없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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