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이면 어느 사회라 할 것 없이 그렇듯이 우리 사회도 빈부격차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갈등이 만연하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정치적 문제로 인한 좌·우 갈등이 매우 심하다. 심하다 못해 척(隻)지는 사람들도 너무 많아져 국민 통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색깔과 지역이 다른 정권이 좀 바꿔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서로 몇 번씩 교체해 정권을 잡아봤는데도 그것이 답은 아니었다.
알다시피 '갈등'(葛藤)의 어원이 참 재미있다. '칡'(葛)과 '등나무'(藤)가 만나는 데서 '갈등'이 비롯된다. 칡과 등나무는 모두 대를 휘감고 올라가는 습성이 있는데 칡은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지만 등나무는 이와 반대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방향을 일부러 바꿔 놓아도 다시 제 방향대로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DNA의 어떤 속성이 그렇게 작동하는지 모르나 참 신기하기도 하고 식물의 생존 혈투 또한 동물계 못지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성질이 다른 이 둘이 같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게 되면 서로 얽히고설켜서 풀어내기가 매우 힘들다는 의미에서 갈등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단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칡과 등나무 간의 갈등은 마치 개와 원숭이의 견원지간(犬猿之間)같이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부정적 의미로 간주된다. 그러나 더 깊이 살펴보면 칡과 등나무는 서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지만 항상 공존하고 있고 그 나름대로 신사적인 규칙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는 방향이 이렇게 좌·우로 달라지는 습성을 가진 것이 칡과 등나무뿐만은 아니다. 나팔꽃과 메꽃, 박주가리, 마, 새삼 등이 칡과 같이 오른쪽으로 도는 이른바 우파(右派)들인 데 반해 등나무와 같이 인동초, 환삼덩굴은 왼쪽으로 도는 좌파(左派)들이라고 한다. 더덕은 왼쪽으로 도는 것도 있고 오른쪽으로 도는 것도 있다고 한다. 마치 사람의 양손잡이와 비슷한 것 같다.
자칫하면 정치적 오해를 살 수도 있어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인동초(忍冬草) 하면 지난 18일 서거 13주년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김 전 대통령의 삶이 모진 겨울의 추위에도 가녀린 푸른 잎을 떨구지 않고 한겨울을 보낸 후 이듬해 봄 예쁜 꽃을 피우는 인동초와 닮았기 때문에 인동초가 그의 상징이 된 것이리라. 거기에 하나 더해 인동초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는 측면에서도 좌파 성향이 강했던 그를 상징하는 것이 걸맞다고 보여진다.
하여튼 칡과 등나무 등 넝쿨식물의 생존 행태를 보면 기생식물 같지만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해 밉지가 않다. 사람이 혼자 살지 못하고 때로는 남에게 신세도 지고 더불어 살아야 하듯이 넝쿨식물도 혼자 서지 못하고 남을 의지해야만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식물들은 다양성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존을 위한 처신을 아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보다 나은 것 같다. 승자독식의 현대 인간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들 넝쿨식물은 설사 한자리에 있더라도 서로 죽일 정도로 헐뜯고 피를 흘리지 않고, 서로를 배려해 각자 방향을 바꿔 살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눠서 오르는 것이다. 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서로 종들 간의 갈등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한쪽이 좌를 택하면 다른 쪽이 우를 택하기로 했듯이.
갈등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갈등(conflict)은 '충돌하다, 부딪히다'라는 뜻의 라틴어 'confligere'에서 유래했듯이 두 물체가 충돌하면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갈등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면 에너지가 생겨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표시로도 볼 수 있다. 갈등은 에너지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드는 셈인 것이다. 갈등이 없다면 일사불란(一絲不亂)해 질 수는 있으나 결국에는 다양성 부족으로 종(種)의 퇴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갈등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문명의 발달도 없었는지 모른다. 갈등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인류의 역사는 갈등의 역사로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갈등이 있는 곳마다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칡과 등나무처럼 경쟁은 하되 공존하는 지혜와 배려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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