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65>젊은 김정희의 시서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부채그림

미술사 연구자

김정희(1786-1856),
김정희(1786-1856), '송백간노형(送白澗老兄)', 종이에 수묵, 22.7×60㎝,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추사 김정희가 길 떠나는 벗 백간 이회연에게 준 송별 선물이다. 한여름 여행길에 요긴한 접부채 한 자루를 선물하며 그림을 그리고 자작시를 써넣었다. 시의 첫머리에 찍은 엽전 모양 인장은 '길이 서로 잊지 말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다. 3수의 시는 이렇다.

대열송군행(大熱送君行)/무더위에 그대 여행 송별하자니

아사정로호(我思政勞乎)/내 심사 정녕 애가 쓰이네

사증황한경(寫贈荒寒景)/차갑고 황량한 경치를 그려주니

하여북풍도(何如北風圖)/북풍도와 비교하면 어떠할지

수락어교제(水落魚橋際)/수락산과 어교 즈음인가

우청학수처(雨晴鶴峀處)/비 개인 학협인가

화지불화인(畵之不畵人)/가는 곳을 그리면서 가는 사람 그리지 않은 것은

군금차중거(君今此中去)/그대가 지금 이 그림 속을 가기 때문

아신여아정(我神與我情)/나의 마음과 나의 정은

재세자권석(在細玆拳石)/조약돌같이 작은 이 물건에 있다네

출입군회수(出入君懷袖)/이 부채가 그대 소매 속을 드나든다면

하이삭신석(何異數晨夕)/조석으로 자주 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첫번째 시에서 차갑고 황량한 산수를 그린 것은 더위를 잊으라는 뜻이고, 두번째 시에서 사람을 안 그린 것은 자네가 이 그림 속을 가듯 시원하게 여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이 부채를 지니고 이 선면(扇面)을 펼치면 내 얼굴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의 마음이 담긴 시와 글씨, 그림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김정희의 시서화인(詩書畵印)과 휘황찬란한 현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김정희다운 작품이다. 김정희는 젊은 시절부터 상상력이 남달랐다.

이별할 때 시를 지어주는 것은 오랜 전통이었다. '사기·공자세가'에 '부귀자송인이재(富貴者送人以財) 인인자송인이언(仁人者送人以言)', 곧 '부귀한 자는 송별할 때 재물로써 하고, 어진 자는 송별할 때 말로써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헤어지기 아쉬운 정과 여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작별의 문학을 임별증언(臨別贈言), 신장(贐章), 별장(別章) 등으로 불렀다.

왼쪽 끝의 잔글씨는 김정희와 석교(石交)의 우정을 자부한 절친 황산 김유근(1785-1840)의 글이다. 벗을 대하는 마음이 정성스러웠던 김정희는 친구 복이 많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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