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사투리로 랩 쓴 래퍼 '탐쓴' "이기 힙합 아입니까"

지난달 4번째 정규앨범 '코리안 셰프' 발매
상원고·영남대 시절 이야기 담고 트로트 '대구역 밤 11시' 재해석
세련된 비트와 투박한 가사 조합, 자연스러운 지역 정서 묻어나와
“대구서 활동해도 잘 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파”

래퍼 탐쓴. 탐쓴 제공
래퍼 탐쓴. 탐쓴 제공

래퍼 탐쓴(오른쪽) 공연 모습. 탐쓴 제공
래퍼 탐쓴(오른쪽) 공연 모습. 탐쓴 제공

'난 내가 젤로 싫어하는 기 로칼 피해의식/ 난 겁나리 좋은 거 내면 결국 된다는 식/ 그렇게 여서 벌써 빚어낸 곡 수만 억수로/ 많크든, 근데 인지도는 반비례 뭐, 개안타// 이카다 망하면 것도 내 팔잔기라/ 그 정도 결심도 안 하믄 니가 힙합? 음/ 근데 난 지 한계를 니처럼 함부로 막 재단 안 해/ 이기 힙합 아입니까? 상수햄, 예?'

영화 '대부'에 등장하는 총 이름 'Tomsson'을 랩 네임(래퍼의 활동명)으로 쓰는 래퍼 탐쓴(29·본명 박정빈). 그가 지난달 28일 발매한 4번째 정규앨범 'Korean Chef'(코리안 셰프) 수록곡 '영'의 가사 일부다. 앨범 제목 '코리안 셰프'는 한국적인 재료(가사)들을 가지고 요리(음악)를 만들어 선보인다는 콘셉트. 탐쓴은 한국어로 가사를 쓰는 래퍼이고, 그가 지향하는 한국 힙합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답을 이 앨범에 담긴 15곡에 녹였다는 의미다.

사투리 가사에서 알 수 있듯 그의 고향은 대구다. 지금까지 줄곧 '힙합의 변방' 대구에서 활동했지만, 활동 반경은 '전국구 힙합 뮤지션'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탐쓴은 곡을 작업할 때 비트 부분은 가깝게 지내는 작곡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가사를 쓰는 데 주력하며 세상에 관한 다양한 철학을 가사에 녹여낸다. 그가 힙합을 좋아하게 된 계기 또한 '가사'였다.

"글쓰기를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힙합은 다른 노래에 비해 가사의 양이 많은 편입니다. '귀로 듣는 영화' 같은 느낌도 있었고요. 중학교 시절 집과 학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가사를 쓰기 시작했죠."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도 작사 능력 덕분이다. 그는 가수 아이유가 부른 Mnet 'I-LAND' 주제곡 'into the I-land'에 작사가로 이름을 올렸다. 2020년 그의 앨범을 인상 깊게 들었던 빅히트엔터테인먼트(지금의 하이브)로부터 작사 작업을 의뢰를 받아 협업한 결과물이었다. 그밖에도 MC메타, 캐시노트, 퀸 와사비 등 국내 유명 힙합 뮤지션과의 협업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 가사가 대구 사투리인 곡은 '영'이 유일하다. 하지만 6번째 트랙 '상원', 7번째 트랙 '영남' 등도 각각 그가 상원고와 영남대를 다니던 시절 대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처럼 다수의 곡에 대구의 정서와 이야기를 담아내는 건 탐쓴 음악의 독특한 지점이다. '역전포차', '053', '동대구역', '동성로에 나갈 때까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 1월 발표한 싱글 '역전포차'는 큰 화제를 모았다. 탐쓴은 1966년 발매된 오기택의 트로트 '대구역 밤 11시'를 힙합으로 재해석해 MC메타와 함께 대구 사투리로 벌스(verse)를 채웠다. 그 결과 세련된 비트와 투박한 가사가 어우러진 독창적인 곡이 탄생했고, 사투리 랩의 참맛을 보여준 곡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그가 강박적으로 '대구'를 의식하는 건 아니다. "예를들면 전 사실 홍대에 놀러 간 게 전부고 이렇다 할 추억도 없는데, 남들이 홍대를 외친다고 저도 같이 외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대구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는 솔직한 제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대구의 정서가 묻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래퍼 탐쓴 공연 모습. 탐쓴 제공
래퍼 탐쓴 공연 모습. 탐쓴 제공

사실 국내 이름난 래퍼들의 출신지는 다양하지만, 그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서울이다. 그만큼 지역에서 힙합 뮤지션으로 살아남는 게 어렵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데뷔 8년차인 그의 행보는 도드라진다. "대구에 사는 게 좋고 이곳에서 뭔가 만들고 싶은 게 제 마음인데, 그런 본심을 속이면서까지 서울로 가 작업한다면 그건 더 이상 힙합이 아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는 대구 힙합신(scene)을 위한 활동도 한다. 2020년 기획해 매년 선보이고 있는 공연 '랩 다이브'가 대표적이다. 한 번도 무대에 선 적이 없거나 경험이 적은 지역 아마추어 래퍼를 위한 무대다. 그밖에도 K2 공군부대와 지역아동센터에서 랩 강의를 하며 대구 힙합신을 다지고 있다.

"재능 있는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다들 서울로 가려고만 하는 걸 보면서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해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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