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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행복한 이유

그렉 이건 지음·김상훈 옮김/ 허블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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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이유(그렉 이건 지음·김상훈 옮김/ 허블 펴냄)
내가 행복한 이유(그렉 이건 지음·김상훈 옮김/ 허블 펴냄)

기계를 쓰면 '기계의 마음'이 생긴다. 일찍이 중국의 사상가 장자는 '기심'(機心)을 논하며 기술의 편리함을 경계할 것을 말했다. 기계가 생기면 뭐든 기계로 일을 하려고 하고 뭐든 기계에 기대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는 게 요지다. 스마트폰의 발명 이후 많은 사람이 현실보단 가상세계에서 의미를 찾게 되는 오늘날만 봐도 그렇다. 시간이 흘러 인류의 기술력이 발전할수록, 이 '기계의 마음'은 더 노골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터다.

호주의 공상과학(SF) 작가로 다수의 하드 SF(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에 무게를 두고 쓴 SF) 작품을 발표한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가 출간됐다. 중·단편집에 실린 작품을 발췌해 엮은 것으로, 모두 11편의 글이 실렸다.

저자는 미래의 첨단 과학기술이 우리의 주변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 나아가 마음까지 파고드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기에 참신함을 넘어서 기괴하기까지 한 소설의 설정은 독자의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각각의 중·단편에는 혼수상태의 뇌를 여성의 자궁에 보관해두는 기술이나 수천 명의 데이터로 만든 의뇌, 몸에 삽입하면 뇌신경계를 조작해 특정한 신념이나 욕망을 주입하는 뇌 임플란트 등 기상천외한 과학적 수단이 등장한다.

소설이 가장 비중을 두고 다루는 문제는 이런 기술을 몸 안에 받아들인 인간에 어떤 '기계의 마음'이 생기는 지다. 인간의 감각과 의식마저 바꾸는 기술. 이런저런 장광설을 걷어내면, 이런 기술이 전제하는 바는 명료하다. "인간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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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내가 행복한 이유'에서 수술 후유증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된 주인공 '나'는 4천 명의 뇌 데이터를 모아 만든 의뇌를 이식받게 된다. 의뇌는 특수 기능을 통해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한다. 음악부터 음식, 성적 지향까지 모든 영역이 선택의 범주 안에 있다. 그저 리모컨 버튼 한 번만 눌러도, 자신을 행복하게도 혹은 슬프게도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뇌를 통제하는 완벽한 기술 아래,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바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조절되는 감정은 진정한 자유의지의 실현일까, 아니면 의뇌가 만들어낸 화학적 결과물일 뿐일까. 정체성 혼란을 느낀 주인공은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허무감을 떨치지 못한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뇌마저 '공산품'으로 갈아 끼울 수 있다면, 인간성을 보증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고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자발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들,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감정과 욕망이 정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믿고 있는 인간성이란 애당초 뇌파와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했던 것일까.

미국의 SF 작가 테드 창은 추천사에서 "각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의문에 관해 숙고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결과를 철두철미하게 탐구한다"고 했다. 국내 인기 SF 소설가인 김초엽 작가는 "지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눈앞에 그려지는 장면은 세밀화처럼 선명하며, 무엇보다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532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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