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주민등록초본이 필요해서 면사무소에 들렀다. 초본을 떼보니 출가하기 전 이사를 했던 횟수가 20번이 넘었다.
나의 기억 속에 부모님은 항상 주거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다. 형편이 어려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게 느껴지셨으리라. 덩달아 나도 집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주거가 안정돼야 할 텐데 자꾸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다.
시간이 흘러 두 분이 열심히 노력해 서울에 조그마한 집을 장만하게 됐는데 내 나이 18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께서는 새 집을 쓸고 닦고를 반복하면서 얼마나 집을 아끼고 사랑하셨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그 집에서 20년을 살고 이생을 마무리하셨다. 당뇨합병증으로 오랜 시간 투병을 하시면서도 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셨다. 요양원에서 하루 외박해 집에 돌아오시면 문고리를 잡고 '집에서 죽고 싶다, 하루라도 집에서 살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꽤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생각하면 아버지 목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나는 출가자는 집에 가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는 나만의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병중에도 들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그럴싸한 말을 앞세워 잘못 살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늘 걸린다.
집을 생각하면 두 가지 마음이 든다. 마음이 쓰라리고, 간절히 원한다. 태어날 때 그리고 죽을 때도 집이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집이란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안주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포함돼있다.
요즘 청년들은 집을 사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먼 미래의 이야기라 생각되기도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속해서 치솟는 집값은 꿈을 꾸는 그것조차도 허락되질 않는다.
법정스님의 저서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 '소욕지족 소병소뇌(少慾知足 少病少惱)'란 글귀가 나온다.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며,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란 의미다. 머리로는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좀 더 갖길 원한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사는 삶은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집에 관한 생각을 심사숙고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위한 집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가 자신만의 집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맛지마 니까야' 정견경에서는 괴로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어남이 괴로움이고, 늙음이 괴로움이고, 질병이 괴로움이고, 죽음이 괴로움이고, 근심, 슬픔, 고통, 우울, 불안이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 갈망하는 마음이 남김없이 사라질 때이다. 집착이 없어지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듯,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속에 괴로움의 집이 있다면 해탈의 집으로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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