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AI 의사 '닥터 왓슨'의 퇴장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셜록 보다 똑똑한 닥터 왓슨'

인공지능(AI) 의사 닥터 왓슨이 6년 전 국내에 도입될 때 들었던 찬사다. 흔히 닥터 왓슨이라 불리는 '왓슨 포 온콜로지'는 IBM이 개발한 의료용 인공지능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이다. 닥터 왓슨은 300종 이상의 의학 논문, 200종 이상의 의학 교과서를 분석해 암 치료법을 제시한다.

닥터 왓슨의 진료실에는 흰 가운을 입은 '로봇 의사'는 없다. 의료진을 위한 모니터만 있는데, 닥터 왓슨의 본체는 미국 IBM 본사에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영상 소견, 조직 검사 결과 등 정보를 입력한 후 '왓슨에게 물어보기'를 클릭하면 10초 안에 강력 추천, 추천, 비추천 등으로 구분해 치료법을 제시한다.

암 환자의 치료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는 등 닥터 왓슨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실제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암 환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평가 역시 있다. 그런데 'AI 의사의 효시'인 닥터 왓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다. IBM이 적자를 이유로 사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닥터 왓슨이 외면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의학적 검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인도의 마니팔 병원에서 3년간 유방암, 대장암, 직장암, 폐암으로 치료받은 환자 1천 명을 분석한 결과 닥터 왓슨과 의사와의 의견 일치율이 직장암 85%, 전이성 유방암 45%, 폐암 17.8%로 암종에 따라 차이가 컸다. 또한 닥터 왓슨이 미국, 유럽 등 서구의 데이터 기반이므로 인종적 특수성이나 국가별 보험 제도의 차이가 프로그램에 반영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닥터 왓슨의 퇴장이 의료 인공지능의 종말을 뜻하는 건 아니다. 더 똑똑해지기 위한 잠시 멈춤이다. 국내에서도 '토종 의료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연구자들이 힘을 쏟고 있다. '인공지능과 의사가 경쟁하면 누가 이길까?' 이런 질문은 이미 도래한 인공지능 시대에 무의미하다. 지금은 인공지능의 장점을 활용해 그동안 멀어졌던 의료의 본질로 다시 돌아갈 좋은 기회다.

'그냥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라. 그는 당신에게 진단명을 알려주고 있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 윌리엄 오슬러의 말이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의 말을 가로채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8초다. 환자는 증상조차 다 말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은 이처럼 바쁜 의사에게 '환자와의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의사 린다 친(Lynda Chin) 교수는 '진료 중 정보 찾는데 13분, 대화에 2분 할애가 아니라 2분 만에 정보를 얻고 13분간 환자와 대화 나누기'를 상상했는데, 인공지능 덕분에 현실이 될 수 있다.

'공감과 이해가 의사의 칼이나 약사의 약보다 중요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환자는 의사의 '따뜻한 공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 무엇보다 의학교육의 책임이 크다. 의사의 공감은 '사교적 로봇'이나 '공감 유발 앱'이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더 잘하는 '지식 암기'식 의학교육이 아니라 환자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인본주의적 의학교육에 매진해야 한다.

'컴퓨터로 대체 가능한 의사라면 대체되어 마땅하다.'

의료 인공지능의 시대, 하버드 의과대학 워너 슬랙(Warner Slack) 교수의 말씀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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