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베트남 하노이 출신의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이 춘천과 통영, 서울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그는 피아니스트 임동민, 임동혁 형제와 조성진보다 훨씬 이전 1980년 제10회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이다. 클래식 음악은 모름지기 유럽인들의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인데 동양인이 수상을 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국악 콩쿨에서 독일인이나 이태리 사람이 수상을 하였다면?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공의 실력자에게만 수상의 영예가 주어진다.
당 타이 손에게는 골프선수 박세리와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와 같은 열정적인 어머니가 있다. 피아니스트인 그녀는 하노이 음악원을 설립하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당 타이 손의 가족도 예외 없이 산속으로 피신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피아노만은 수레에 싣고 다녔다. 강을 건널 때는 피아노도 물에 잠기고, 산을 오를 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견뎌야 했지만, 그의 가족은 끝내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속의 고요한 밤, 어머니의 쇼팽 연주를 들은 이후 당 타이 손은 쇼팽곡에만 매달렸다.
그는 캐나다 몬트리얼 유학 시절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쇼팽의 작품에서 여리게 연주하는 부분은 고요한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이며 조용히 떨어지는 소리라고.
첫 레슨에서 그는 나의 연주에 '김치'가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 연주가 조금 무겁다고 하며 이유를 물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던 유학생의 고충과 개인적인 고민을 느낀 모양인지, 자신이 러시아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시절을 들려주었다. 나의 고민은 선생님 앞에선 금세 물거품이 됐다.
그는 다시 말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에 마음이 무거우면 연주자의 음악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마음을 푸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오히려 몸을 먼저 풀라고 한다. 몸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내게 뜬금없이 춤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하여 나는 곧장 대학 체육관으로 가서 라틴댄스 프로그램에 등록하고는 춤을 배웠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나자 선생님은 이제 소리가 많이 가벼워졌다고 말해주었다.
그의 연주를 10년 만에 통영에서 다시 듣게 되었다. 감격이다. 그도 이제 60대 중반의 피아니스트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화려한 대곡이 아닌 왈츠와 마주르카 같은 짧은 소품들이 많았다. 10년 전 몬트리얼에서 다이나믹하고 화려한 연주를 선보인 그는 이번 연주에서는 피아니스트라기보다는 고독한 명상가나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듯한 또 다른 울림이었다.
통영 공연은 더러 빈자리가 눈에 띄었지만,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의 공연은 일치감치 매진됐고, 관객들의 환호도 대단했다. 서울 못지않게 문화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곳 대구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면 나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명을 하고, 나아가 하늘 저편에서 떨어지는 뭇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시아의 쇼팽 당 타이 손, 그는 피아노의 ' 지인'(知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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