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66>집요한 관찰과 혼을 실은 붓에서 나온 윤두서의 말 그림

미술사 연구자

윤두서(1668-1715),
윤두서(1668-1715), '세마도(洗馬圖)', 1704년(37세), 비단에 수묵, 46×75.7㎝, 해남 윤씨 종가 소장.

섬세한 세필의 정교한 필치로 말과 인물, 언덕과 시냇물, 각종 나무와 풀로 화면을 풍성하게 구성한 윤두서의 '세마도'다. 왼쪽 위에 작은 글씨로 '갑신(甲申) 유월일(六月日) 제(製)'로 낙관했다. 윤두서의 나이 37세 때인 1704년(숙종 30년)이니 318년 전 그림이다. 비단 바탕에 스민 먹빛이 생생하다. 윤두서의 말 그림 중 유일하게 날짜를 알 수 있는 그림이고 크기가 가장 큰 그림이다.

당나라 관리 차림의 세 사람과 말 세 마리를 그렸다. 한 명은 자신의 백마와 함께 웅덩이에 들어가 말의 어깨에 솔질을 하고, 두 사람은 말을 매어놓고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쉬는 중이다. 제각각인 말의 자태, 사람의 표정과 동작이 다채로우면서 실감난다. 인마도(人馬圖)는 동물과 인물에 모두 능통해야하는 그림인데 '세마도'는 여기에 산수까지 더해 윤두서의 다양한 그림 실력을 한눈에 보여준다.

중국 고전 '한비자'에 견마최난(犬馬最難), 귀매최이(鬼魅最易)라는 말이 나온다. 제나라 왕이 그리기 가장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을 묻자 화가가 한 대답이다. 개나 말이 가장 어렵고 귀신이나 도깨비가 가장 쉽다니 상식과 맞지 않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화가는 사람마다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개와 말은 진짜처럼 그리기 어렵고, 도깨비는 본 사람도 없으려니와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으니 오히려 쉽다고 했다. 예로부터 화가들은 실물 사생을 어렵게 여겼다.

윤두서의 말 그림은 집요한 관찰의 결과다. 윤두서 가문은 마벽(馬癖)이 있어서 선조들이 대대로 말을 길렀고, 윤두서도 말을 좋아해 항상 준마를 길렀다. 말 그림을 그릴 때면 윤두서는 마구간 앞에서 종일토록 관찰했다. '세마도'는 대상을 철두철미하게 끝까지 파고 들어가 점 하나, 선 하나로 요약하며 그 점과 선에 온 정신을 깃들인 윤두서의 완벽주의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려내려 했던 바를 어느 정도 이룬 득의작(得意作)이라고 생각해 날짜를 써넣었을 것 같다.

윤두서의 말 그림은 아들 덕희에게 가전으로 이어졌다. 18세기 조선의 미술 애호가들은 대윤, 소윤으로 부르며 윤두서, 윤덕희 부자의 말 그림을 아꼈다. 윤두서의 말 그림이 14점, 윤덕희의 말 그림이 11점 전한다.

말 그림의 핵심은 말의 생김새에서 드러나는 근골(筋骨)이 조화를 이룬 강인함과 말의 자태에서 풍겨 나오는 신준(神俊)함이다. 말은 옛 사람들에게 내 몸의 연장이자 분신으로 여겨진 동행자였다.

미술사 연구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