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김멜라 작가가 두 번째 소설집 '제 꿈 꾸세요'를 출간했다. 작년 문지문학상 등을 받은 '나뭇잎이 마르고'와 올해 젊은작가상을 받은 '저녁놀' 등 도발적이면서도 명랑한 8편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제23회 이효석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된 '제 꿈 꾸세요'는 김멜라의 상상력에 제대로 빠져볼 수 있는 작품이다. 망자의 시선에서 죽음을 다루지만, 무겁지 않고 발랄하다. 색으로 치면 따뜻한 파스텔톤의 분위기가 시작부터 끝까지 작품을 감싸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나'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캐러멜향이 첨가된 아몬드크런치 크랜베리초코바로 인한 질식사. 이미 몇 번 극단적인 시도를 실패했던 '나'이기에, 이런 방식의 죽음은 더욱 어이가 없다. 나름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인생인데, '혼자 사는 삼십대 무직 여성'의 죽음이라는 뻔한 결말로 마무리 짓게 된 것도 억울하다.
혼란스러운 순간, 죽은 이들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나타나 말을 건넨다. 꿈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부고를 알리고, 뒷수습을 부탁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친구와 헤어진 연인, 엄마를 차례로 떠올린다. '나'의 시체를 발견하면 어떻게 반응을 할까? 이들의 꿈에 나타날 수 없는 이유가 하나둘 생긴다.
망설이던 '나'는 결국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자 하던 계획을 포기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지막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빈 괄호'여도 괜찮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나라는 존재를 빈 괄호로 두고 싶었다. 이제 죽은 나를 발견해주길 원하지 않았다. 내 죽음의 경위와 삶의 이력들을 오해 없이 완결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나와 이어진 사람의 꿈으로 가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작품마다 확연히 달라지는 문체와 기상천외한 설정을 음미하는 것도 이번 소설집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수록작 '저녁놀'에서는 무려 남성 성기 모형의 성인용품. 이른바 '딜도'가 화자로 등장한다. 자칭 '모모(무쓸모의 쓸모)'는 레즈비언 커플인 '눈점'과 '먹점'이 "더 가까이 닿고 싶은 마음"에 구매했지만, 한 번도 사용하진 않았다.
작가는 무쓸모의 위기에 처한 모모의 내적 분노와 곤궁한 생활 속에서 분투하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대비해 그려냈다. 모모가 상징하는 '남성 중심주의'는 작품 말미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뒤집힌다.

제12회 젊은작가상과 제11회 문지문학상을 받은 '나뭇잎이 마르고'는 여성 퀴어와 장애라는 소수자성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온다. '체'는 장애로 인해 언어활동과 보행에 제약이 따르는 레즈비언이다. 또한 자신의 속도를 비장애인에 맞추지 않는, '자긍심을 가진 소수자'이기도 하다.
소설은 소수자성을 지닌 체가 타인으로부터 배려받지만, 결코 좁힐 수 없는 '어떤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후배 '앙헬'은 "아랑 겨호하애?"라는 체의 청혼을 거절한 뒤 생각한다. 체가 남자였다면, 혹은 좀 더 평범한 여자였다면, 대답은 달랐을까. 소설은 결말부의 해석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도 책장 너머 계속될 체의 이야기가 비극으로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헛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344쪽,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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