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쉼을 위한 시간, 어디서 찾을까?

최경규

"이보게, 언제 시간 되면 집에 오게나, 자네에게 줄 것이 있다네" 지난주부터 잠시 다녀가라고 하신다. 무엇인지 모른다. 여쭈어보아도 그냥 필요할 물건이라고 하시며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 선물이란 언제 받아도 기분 좋은 일, 그렇지만 어쩐지 선생님에게 받는 선물은 다른 이들에게서 받는 그 무엇과는 다르다.

선생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30년도 훨씬 넘는 세월, 나에게 시(詩)는 무엇이고 글이란 무엇인지 마음에 그려주신 문학 선생님, 요즘 커가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나를 떠올려 보지만 여전히 그때의 난 중학교를 갓 졸업한 까까머리 학생이었다. 그는 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총각 선생님, 날씬하고 목소리까지 좋은 선생님이 나는 참 부러웠다. 그래서 더욱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지 모른다.

강산이 세번이 바뀌고도 남을 시절, 해외에 있을 때는 가까이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국내에 있을 때는 바빴을 나에게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걱정 마라 나는 괜찮다'라 하시는 선생님과 만남은 그리 잦지를 못했다. 나 역시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이지만, 안정되고 조금이라도 더 성공했을 때 찾아뵙는다는 어설픈 변명은 벌써 30년이란 달력을 넘기고 있었다.

집으로 찾아뵈었을 때 선생님이 들고나오신 것은 뜻밖의 작은 봉지였다. 읽으신 좋은 책들을 골라 주실 거라는 추측으로 찾아갔던 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선물을 건네시며 "바빠도 좀 쉬어가면서 하게, 글 쓸 때 필요할 거야"라시며 얼른 돌아가라고 등을 떠미신다. 시원한 냉면이라도 함께 하고픈 마음에 말을 건네었지만 다른 약속이 있다는 하얀 거짓말을 하시며 발걸음을 먼저 돌리신다. 나는 그저 선생님의 작아진 어깨만 눈에 담은 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었다.

◆쉼,전진을 위한 에너지 충전 시간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향초가 들어있다. 그리고 꾹꾹 눌러쓴 편지 한 장이 꽃 가마니를 탄 새색시처럼 봉투 안에 곱게 들어있다.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향을 피우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그냥 휴식을 취한다. 그 이유는 봉투 겉면에 크게 적혀있는 한 글자. 쉼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방 안을 채울 것으로 생각했던 선생님의 선물은 책이 아니었다. 작은 향초. 그 향기가 방 안에 가득 채워진다.

쉼, 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분이 지나자 향은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방 안의 향기도 점차 사라진다. 창밖을 보며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들어본다. 그간 들리지 않았던 새들의 지저귐도 들린다. 왜 그 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내 시끄러운 머릿속, 엔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 휴식 이것이 참으로 힘든 이가 많다. 삶에서 진정 휴식이 필요한, 지친 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창밖 매미 소리 사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하는 잘못된 생각 하나가 있다. 쉬는 것을 일의 연속으로 보지 않고 단절로 보거나, 일에 방해가 되는 시간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는 반평생, 열심히 살아왔음에 쉼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오히려 '직무 유기'라고 표현하며 쉼을 터부시하는 사람까지도 있다.

뇌에도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충전은 단순히 좋은 음식과 약으로 채울 수 없다. 바로 쉼이라는 시간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전진을 위한 에너지 충전 시간이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쉬는 것이 시간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일의 효율성은 더 향상된다. 소위 말하는 기적의 성과를 창조한다는 몰입 역시 쉼. 이후에 진정 만들어질 수 있다.

◆충전을 위한 세 가지 방법

사람마다 충전법이 다를 테지만 심리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 방법을 권한다. 첫 번째 자연과의 교감이다. 햇살 좋은 날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 충전이 될 수 있다. 인위적으로 만든 빛들에서 벗어나 자연이 선물하는 빛을 마음껏 받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 그 자체가 보약이며 충전이다. 허리를 숙여 꽃들을 만져보고, 지나가는 개미들의 느린 움직임을 보는 것, 그 시간을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둘째, 문화와의 교감이다. 좋아하는 음악, 멋진 그림을 보고 그 안에서 자유를 느껴보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책 속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그려보기도 하고, 잊혔던 첫사랑의 기억도 살포시 소환하는 일도 감정을 치유하고 쉼을 충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먼 혼자만의 일기장 혹은 낙서장이라 할지라도 모든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쉼의 충전 속도는 빠르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사람과의 교류이다.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사람 만나는 일이 부담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향기가 나는, 눈빛만으로 오랜 대화를 할 수 있는 만남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때로는 1인칭의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청중의 관점에서 나를 볼 수 있다.

치열하기만 한 삶의 전쟁터, 내 주변에만 폭탄이 터지는 듯한 감정들 속에서,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이 많구나." 그 간극에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의 평균 근무시간은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러한 이유인지, "여가시간, 주로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90% 이상이 "무엇을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빨리 지치는 이유, 소위 말하는 번아웃이 되는 이유는 일하는 뇌만 계속 가동되기 때문이다. 쉬어야 하는 패턴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뇌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조성된다.

그래서 쉬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오늘 적어본 세 가지 방법 중, 자신에게 맞는 한 가지를 찾아 직접 쉼을 경험하여보자, 쉴 시간이 없다고 에둘러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도 쉼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이라 말해주고 싶다.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Here and now, 현자들이 하는 고귀한 말의 공통분모는 언제나 '오늘을 살아라'였다. 오늘을 잘 살기 위해 해야 하는 한 가지는 당신의 가슴 위에 무겁게 느껴지는, 바로 그것을 내려놓고 쉬는 것이다.

최경규

최경규 심리상담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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