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편 근처만 가도 '으르렁'…'개시누' 시집살이 만만찮네

반려인과 비반려인, 새 가족 되는 법

건강이는 오빠 껌딱지다. 은지 씨가 끼어들 틈을 도무지 주지 않는다.남편 팔에 안겨있는 건강이가 말한다.
건강이는 오빠 껌딱지다. 은지 씨가 끼어들 틈을 도무지 주지 않는다.남편 팔에 안겨있는 건강이가 말한다. "우리 오빠는 내꺼야 멍멍"

건강이는 남편 인제민 씨의 여동생으로 김은지 씨에게는 손아래 시누다.
건강이는 남편 인제민 씨의 여동생으로 김은지 씨에게는 손아래 시누다.

추석 연휴가 다가오자 긴장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며느리들이다. 아무리 천지가 개벽했다 해도 며느리는 며느리인 법. 시댁에선 마음 편히 엉덩이 한번 바닥에 붙이지 못하는 게 며느리의 운명이다. 거기에다 시댁 식구의 구박이나 타박까지 더해진다면 며느리의 눈에서는 정말 피눈물이 난다.

결혼 8년차 김은지 씨는 시누이 시집살이에 호되게 당한 케이스다. 처음 시어른에게 인사 갔던 날 시누는 새침맞은 얼굴로 은지 씨의 인사도 제대로 안 받아줬다. 그저 제 오빠인 남편만 졸졸 따라다니며 도무지 곁을 안 내주더니 은지 씨가 야심 차게 꺼내 입은 롱 코트에 똥을 싸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은지 씨의 시누는 20살 추정 말티즈 '건강'이다.

◆남편 근처만 가도 멍멍! 개시누 시집살이 시작

"결혼 전에 처음 시댁에 인사 갔던 날이었는데, 도착해서 롱 코트를 잘 개어 한쪽에 뒀거든요. 그런데 건강이가 제 코트 위로 올라가더라고요. 조금 있다 보니 제 코트 위에 똥을 싸놨더라고요." 건강이는 남편 인제민 씨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강아지다. 주인을 찾아줄 생각으로 데려왔다가 주인을 못 찾아주어 가족이 됐다.

건강이는 그렇게 시댁에서 늦게 얻은 막내딸이 됐다. "건강이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쏟아지던 온갖 사랑이 새로 온 웬 여자에게 쏠린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남편 근처만 가도 이빨을 드러내며 매섭게 짖는 건강이 때문에 은지 씨는 예비 시댁에서 맘 편히 앉아 있지 못했다. 안 그래도 처음 뵙는 시어른들 앞에서 개시누까지 눈치 주는 형국이라니.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 10명 중 3명이 '배우자가 반려견을 반대하면 결혼을 포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반려 인구가 증가하고 반려동물 문화가 급성장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동물과의 유대감이 낮은 비반려인들과의 정서적 문화적 갈등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어차피 시댁에서 키우는 강아지고, 저를 싫어해도 명절이나 행사 때만 피하면 될 거라 생각했죠" 은지 씨의 바람은 결혼 몇 달 만에 무너졌다. 남편만 찾는 건강이 때문에 결국 신혼집으로 건강이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개시누의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소파에 앉은 남편 옆에 붙어 앉으면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와 마구 짖었어요.

손이라도 잡으면 더 짖었고요. 남편이랑 제가 붙어있는 걸 너무너무 싫어하더라고요."하다 하다 건강이는 안방까지 점령했다. 잘 때도 제 오빠만 찾는 건강이 때문에 은지 씨 부부는 각방 아닌 각방을 써야 했다. 침대 두 개를 붙여 건강이를 가운데 두고 저희 부부는 침대 끝에 떨어져서 잤어요. 신혼에 독수공방이라니. 건강이가 좀 얄밉더라고요"

한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은지 씨와 둘이 있던 건강이가 갑자기 '깨갱깨갱' 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남편은 은지 씨가 건강이를 때리는 줄 알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은지 씨가 오해라고 해명했지만 그 후로도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자 남편도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중간에서 이간질하는 시댁 식구 이야기, 커뮤니티에서만 듣던 건데 저에게 일어나니까 당황스럽더라고요" 다행히도 건강이의 이간질은 얼마 못가 들통났다. 은지 씨 옆에 멀쩡히 있다가 깨갱 대는 소리를 내는 건강이의 모습을 남편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딱 걸렸어! 건강이! 이놈아" 건강이는 그 이후로 깨갱 작전을 쓰지 못했다.

반려견에게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반려견에게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가족 맞이하는 반려견에 천천히 다가가세요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가족은 다양한 형태로 변한다. 다 자란 자녀가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기도 하고, 새로운 반려자를 만나 가족을 다시 형성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반려견들도 수많은 변화들을 마주하게 된다.

"건강이와 저는 친해질 겨를도 없이 가족이 됐잖아요. 건강이는 이미 저를 극도로 싫어하는 상태였고.. 제가 조금씩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강아지와 친해지는 법을 얼마나 많이 검색해 봤던지 몰라요". 은지 씨는 개시누 건강이를 알뜰살뜰 챙겼다. 언젠가는 진심을 알아주리라 생각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남편을 대신해 밥을 챙기고, 매일매일 산책을 나갔다.

그럼에도 건강이는 은지 씨를 본체만체 했다. 산책도 남편과 셋이 할 때는 잘만 하다가 남편 없이 은지 씨와 둘이 나가는 날은 아예 걷지를 않았다. 아파트 입구에서 망부석처럼 움직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혹시 제가 자기를 버릴까 봐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유기견이라 한번 버림받은 아픔이 있으니.. 저를 온전히 믿지 않는 상태에서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실외 배변을 하는 녀석이라 산책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은지 씨는 건강이가 냄새 맡는 포인트들을 기억했다가 냄새 맡을 때만 내려주고, 다시 안 걸으면 건강이를 안고 산책했다. 또 더위를 많이 타는 건강이를 위해 여름에는 수시로 얼음 물을 바꿔주고 전용 선풍기도 챙겨줬다. "급하게 다가가지 않고 사소하게 건강이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그런 노력들을 건강이도 차츰 알아주는 것 같더라고요" 3년쯤부터 슬슬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건강이가 온전히 마음을 개방한 데에는 장장 4년이 걸렸다.

새로운 성인 구성원이 집에 들어오는 일이 생긴다면 그 전부터 반려견과 자주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 반려견에게 냄새를 맡도록 하고, 새 가족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또한 반려인은 새로운 구성원에게 반려견의 성격이나, 행동 등에 대해 미리 알려주는 것이 좋다. 반려견에게 간식이나, 식사를 챙겨주는 행동을 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친해지고 나니 친자매 처럼 의기투합! "잘 통해"

은지 씨가 가꾸어 놓은 화초에 관심을 보이는 건강이. 친해지고 나니 친자매처럼 마음이 통하는 건강이와 은지 씨다.
은지 씨가 가꾸어 놓은 화초에 관심을 보이는 건강이. 친해지고 나니 친자매처럼 마음이 통하는 건강이와 은지 씨다.

남편과는 통하지 않는 것도 건강이와는 잘 통했다. 남자는 알 수 없는 여자들만의 세계가 열렸다고나 할까. "제가 베란다에 화초를 키우는데 남편은 무관심이었거든요. 꽃을 피워도 자랑할 데가 없었는데.. 어느 날 보니 건강이가 한번씩 들어가서 화초 옆을 쓱 걸으며 냄새를 맡고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어요" 피아노 전공자인 은지 씨의 연주를 들어주는 것도 건강이 몫이었다. 은지 씨가 피아노를 치면 그 옆에 앉아서 가만히 연주를 감상했다.

무엇보다 은지 씨가 임신을 했을 때 가장 큰 힘이 됐다. "아기 낳는 날까지 입덧을 할 정도로 열달 내내 입덧이 심했어요. 약을 먹어도 매일매일 토를 했어요. 그럴 때마다 건강이가 화장실 앞을 지키고 서 있고, 어지러워서 누우면 제 옆에 와서 체온을 나눠주더라고요" 한 번은 은지 씨가 못 일어나고 끙끙 앓으니 서재에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 짖어대며 어서 오라는 행동을 했다고. 조카를 기다리는 고모의 모습 마냥 건강이는 은지 씨 옆을 지키며 새로운 가족의 역할을 톡톡 해냈다

새언니를 누구보다도 따르게 된 건강이. 비로소 진짜 가족이 된 건강이와 은지 씨가 활짝 웃고 있다.
새언니를 누구보다도 따르게 된 건강이. 비로소 진짜 가족이 된 건강이와 은지 씨가 활짝 웃고 있다.

"시부모님도 나중에는 서운해 하시더라고요. 제 엄마 아빠 보다도 새언니를 더 따른다면서요 (웃음) 전국의 며느리분들~ 시집살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천천히 다가가봐요. 진심이 통하는 날은 언젠가는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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