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변호사 우영우를 만드는 것도, 장애인 우영우를 만드는 것도 우리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자폐를 가진 변호사 이야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장안의 화제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드라마적 요소들도 있지만 자폐 환자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데는 확실히 일조한 것 같다. 이 드라마가 이렇게 인기를 끈 데는 캐릭터의 사랑스러움도 있지만,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편견을 극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데서 청년들이 대리만족을 느낀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의사로서, 이런 환자가 있고 없고를 떠나 우리 사회가 아직 우영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오랜 교수 생활을 하시다가 국립재활원에 스카우트돼서 귀국하신 김종배 박사님은 척수손상 때문에 혼자 서거나 걷지 못하고 손사용도 불편하시다. 초청 강연 중 박사님이, 나는 미국에서는 장애인이 아니었는데 똑같은 내가 한국에서는 장애인이다. 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은 사회 분위기 자체가 나와의 다름 정도로 장애를 받아들이고 장애인의 불편함을 제도적으로 보조하는데,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부분이 미흡해서 아쉽다고, 즉 장애인이 없는 게 아니라 나오면 불편하니까 집에만 있게 된다는 얘기였다.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동네 산보를 하는데, 저만치 앞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는 장애인분이 계셨다. 그런데 멈칫하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시는 거였다. 나는 그분이 멈춘 장소에 다다라 이유를 알게 됐다. 가로수를 보호하기 위해 인도쪽으로 ㄷ자 보도블럭 공사가 되어 있어서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그저 좁은 정도의 인도였지만 전동휠체어가 지나가기에 불가능했다. 그 장애인분은 전동휠체어로는 지나갈 수가 없어 포기하고 되돌아가신 거였다. 그 길을 몇 년째 걸어 다녔지만 지나다니라고 만든 길이 누구에게는 갈 수 없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결국 그 길은 그 장애인분을, 전동휠체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혼자 외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길에서는 혼자 외출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든 거였다.

혹자는 이런 장애인을 위해 보호시설을 더 만들자, 장애인 특수학급을 늘리자. 장애인들의 특수학교를 만들자 이런 얘기를 한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더 안전한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우영우보단, 때론 외면을 받고 때론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지만, (우리도 그렇듯) 일단 본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동료들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월급을 받는 사회인 우영우쪽이 (가능하다면) 훨씬 행복할 거라고, 그 동료들도 더 건강해질 거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단 장애인 뿐 아니라 많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외면한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만으로 그 사람을 배제시키는 것은 면접장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보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끼는 건 괜찮지만 내가 두 발로 걷는 길을 휠체어로 가는 게 내가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건 너무 슬프다. 만약 당신이, 나에겐 2초면 되는 회전문 앞에서 10분째 쩔쩔매는 우영우를 만난다면, 지나는 법을 알려주고 '같이' 회전문을 통과하는 이준호씨가 잠깐 되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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