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중음악] 추석 연휴 ‘독서’ 어때요?…읽을 만한 한국 대중음악 책 둘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 자료수집·대면 인터뷰 등 차별성
한국 근대가수 열전, 전설이 된 가수 54인의 이야기 담아

한국 기타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이 1962년 결성한 그룹
한국 기타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이 1962년 결성한 그룹 '에드 훠'의 '비속의 여인' 앨범.

코로나19 등으로 추석연휴 귀향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나흘간의 추석연휴. 쏟아지는 영상에 피로감을 느낀다면 '독서 정주행'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20세기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책 두 가지를 소개한다.

신현준·최지선·김학선 지음/을유문화사 펴냄
신현준·최지선·김학선 지음/을유문화사 펴냄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

신현준·최지선·김학선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한국 팝의 역사를, 고고학 연구하듯 파고든 책이다. 신현준, 최지선, 김학선 3명의 대중음악 전문가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세밀히 살폈다. 책 제목처럼 마치 고고학 '발굴' 작업과도 같은 치열한 자료 수집과 대중음악 관계자들과의 대면 인터뷰, 정치·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른 심도 있는 해석으로 기존 대중음악 서적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총 4권, 2천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각각 다룬 1·2권은 2005년 펴낸 초판을 개정‧증보한 것이고,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다룬 3‧4권은 지난 5월 처음 세상에 나왔다. 앞서 나온 2권은 대중음악 전문가나 애호가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통하며 절판 후 중고가격이 몇 배씩 뛰기도 했다.

책 제목의 '한국 팝'은 한국이라는 공간의 현대사적 특성을 담고 있다. 대중가요 전체가 아니라, 서양의 '팝'이 '한국'과 만나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그렇게 탄생한 음악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개념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규모로 주둔한 미군은 연예공연이 필요했고 1950년대 후반부터 '미8군 무대' 출신 신예 가수들이 현대적인 대중음악을 만들어갔던 것처럼, 한국 대중음악 발전은 현대 한국의 역사‧지리적 변화와 따로 떼어놓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한 신문 광고란에 실린 조용필 공연 포스터.
1970년대 한 신문 광고란에 실린 조용필 공연 포스터.

1960년대는 미8군 무대에서 서양 대중음악을 노래하던 음악인들의 모습으로 시작해 신중현으로 대표되는 소울가요를 지나 포크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1970년대는 의식과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포크 음악로부터 시작해 대마초 파동으로 굴곡진 가요계의 풍경을 지나 대학가요제와 산울림을 조명하고, 김민기와 조동진 등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1980년대로 가면, 서울 강남의 개발과 함께 논현과 역삼에 여러 기획사와 업체가 자리 잡으면서 이곳이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한다. '신사동 그 사람', '비 내리는 영동교' 같은 노래 제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민주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터져나온 1987년에는 '제1회 한국 록 그룹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1990년대는 혁명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룰라 등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그룹을 이야기하고 한국 록 역사의 큰 줄기를 찾는다. 방시혁을 매개로 한 조동진과 방탄소년단의 희미한 인연도 찾을 수 있다. 과거로 음악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보길 추천한다. 각 488·596·768·756쪽, 각 2만8천~3만2천원.

이동순 지음/ 소명출판 펴냄
이동순 지음/ 소명출판 펴냄

◆한국 근대가수 열전

이동순 지음/ 소명출판 펴냄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거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트집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난 실여 난 실여 내 편지 남 몰래 보는 것 난 실여// 명치좌 구경갈 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 때면 엄벙땡하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 오빠는 트집쟁이야// 오빠는 주정뱅이야, 뭐/ 오빠는 모주꾼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밤늦게 술취해 오는 것 난 몰라/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주쟁이/ 오빠는 대포쟁이야"

1930년대 인기 가수 박향림(1921~1946)이 불러 사랑받은 노래 '오빠는 풍각쟁이'의 가사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떡볶이가 인기였다. 그때도 오빠는 깍쟁이였고 '모주쟁이'(고주망태)였다. 심부름을 시키면 '엄벙땡'(얼렁뚱땅)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회사원은 '월급만' 안 오른다고 짜증냈다. 거짓이나 허풍을 뜻하는 '대포'라는 말을 그 시절에도 썼었다. 일제강점기 말 최고의 작사가로 꼽혔던 박영호는 이 곡에서 구체어와 추상어를 오가며 당대의 문화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이 가사를 보며 100년 전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대중문화의 힘이고 그것을 연구할 이유다.

악극
악극 '항구의 일야' 포스터에 등장한 가수이자 배우 전옥. 소명출판 제공

이런 의미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가 옛 기억이자 전설이 된 54인 가수의 삶과 노래를 '한국 근대가수 열전'에 담았다.

1930년 '유랑의 노래'와 '봄노래 부르자'를 발표한 최초의 직업가수 채규엽을 비롯해 1930년 당시 '째즈'란 장르로 음반을 낸 최초의 재즈 가수 북혜숙, 신민요 터를 닦은 이은파, 목포노래로 한과 저항을 담아낸 이난영, 식민지 여성 비애를 노래한 이화자, 한국 최초 재즈 전문 가수 이복본, '동양의 무희'로 불린 무용가 가수 최승희, 분단의 희생물로 고통을 겪은 계수남, 해방의 감격을 스타카토 창법으로 담아낸 '신라의 달밤' 등으로 유명한 현인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지난달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다. 700쪽, 4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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