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춘추칼럼] 공자가 사표를 쓴 이유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공자는 56세 나이에 조국 노(魯)나라의 검찰총장(大司寇·대사구) 직책에 사표를 던졌다. 공직자로서 한창 잘나가던 공자가 사표를 쓰고 14년간 주유천하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선물 때문이었다. 자신이 모시는 왕이 제사를 지내고, 제사 지낸 고기를 선물하지 않은 일에 대한 강력한 의사 표현이었다. 공자가 사표를 던진 이유가 선물 때문이라니, 사람들은 수군댔다.

선물(膳物)의 선(膳)은 제사에 희생(犧牲)으로 쓰인 고기라는 뜻이다. 선(膳)은 고기(肉)와 좋은 것(善)의 합자다. 옛날 사람들은 고기(膳)를 주는(賜) 행위를 선사(膳賜)한다고 하였다. 고기와 음식이 귀했던 시절, 축제(제사)가 끝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은 공동체 일원이라는 확인이었다. 제사를 지내고 제사 지낸 고기를 참가자들과 나누어 먹는 일은 일종의 선물 공동체의 규칙이었다.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 대상이 되느냐와 얼마나 받느냐는 공동체에서 그 사람의 지위와 신뢰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제사 음식을 선물로 받지 못하면 공동체에서 소외되었다는 뜻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중 공동체 제사에서 제사 음식을 나누는 일은 권력이었다. 종가의 종손은 제사에 참여한 사람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몫을 나누어 주었다. 술과 음식을 얼마나 받았느냐는 그 공동체에서 개인의 위상과 비례한다. 공자는 노나라 왕의 선물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더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힘이 없어졌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월급만 받고 세월을 보내는 일은 공자의 마음이 용납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힘을 실어줄 새로운 선물 공동체를 찾아 떠나는 것이 공자에게는 대의(大義)였다.

이번 추석 때도 어김없이 선물이 오간다. 선물을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것은 여전히 선물 공동체의 일원으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추석 때 나에게 선물을 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의 선물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가져도 된다. 대통령이 준 추석 선물이 중고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선물 공동체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중고 시장에서 비싼 값을 지불하고 대통령이 선사한 선물을 사는 이유는 대통령에게 선물을 받는 공동체 소속이라는 증거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명단에서 빠지면 결국 지금 정권의 선물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 선물의 종류는 본래 의미였던 제사 음식의 범위를 넘어선다. 대통령 문장이 새겨진 시계는 애교에 속한다. 시세보다 싸게 파는 회사 주식이나 상식을 벗어난 50억 원 퇴직금은 선물의 범위를 넘어 뇌물 공동체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가 준 만큼 나도 주는 것은 수수(授受)의 선물이다. 선물이 뇌물이 되면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이익 공동체에서 대가 없는 선물은 없다.

선물은 영어로 gift다. 하늘이 인간에게 준 능력이나 재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 선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모든 인간은 하늘의 선한 의지를 선물로 받아 하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선물을 받고 태어난 우리는 모두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나에게 부여한 하늘의 선물(天命)을 잘 나누고 베풀어 하늘 선물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나눔과 배려, 존중과 겸손은 하늘의 선물을 확장하여 선한 선물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추석 때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하늘의 선물을 주변과 나누어 선물 공동체를 구성하자. 대가를 바라거나 드러내지 않는 선한 행위를 통해 내 안에 하늘을 느끼는 추석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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