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자유의 진짜 의미

이재근 신부

이재근 신부
이재근 신부

나의 상관인 국장 신부는 몇 년 전부터 비건을 실천해오고 있다. 예전에 고기를 무척 좋아했던 선배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비건을 실천하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명을 존중하고 탄소배출을 줄여 생태환경에 도움을 주기 위해 비건을 실천한다는 말을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비건을 시작했을 때는 고기가 먹고 싶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실천을 해오다 보니 이제는 고기 냄새가 싫다고 했다. 그리고 생명 존중과 생태환경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며 비건 생활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고기 냄새도 싫어하는 국장 신부가 한 번씩 비건을 깨는 경우가 있다. 바로 부서 회식을 할 때다. 국장 신부와 달리 함께하는 직원들은 모두 고기를 좋아한다. 당연히 직원들은 상관인 국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스스로가 잠시동안 비건을 포기하고 직원들과 함께한다. 자신이 아닌 오로지 직원들을 위해서 말이다. 고기 냄새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싫을 텐데도 직원들이 미안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도록 함께하려 노력한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을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부러워한다. 때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것이 아닌 본능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통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 의미는 진정한 자유가 아닌 본능을 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오히려 참된 의미에서의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전 소개한 나의 상관처럼 말이다. 그는 비건 생활을 선택했지만, 직원들을 위해 기꺼이 고기를 먹었다. 먹기 싫지만, 사랑하는 직원들을 위해서 선택을 한 것이다. 자녀에게 닭다리를 양보하는 부모의 모습이나 추위에 떨고 있는 연인에게 겉옷을 벗어주는 사람도 이와 같다. 하기 싫은 선택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안에는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소중한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친 자유인이 있었다. 그들은 조선 시대 때 천주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다. 한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조선시대 때 천주교는 박해를 당했다. 단순한 배척이 아니라 배교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박해였다.

세상의 그 누구에게도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신을 위해서 배교하지 않고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가톨릭교회에서는 '순교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9월 한 달을 '순교자 성월'로 지정하여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린다. 그들이 목숨까지 바치며 신앙을 지킨 결과 현재 우리가 지금처럼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자유는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내가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 이뤄진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본능과 자유 중에 선택해야 할 순간을 종종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본능이 아닌 멋지게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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