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외로움과 쓸쓸함

임진형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임진형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임진형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몇 년 전 서울 정독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구(舊) 경기고 자리에 터를 잡고 있어 남다른 의미가 있다. 유서 깊은 도서관에서 나는 림태주의 '관계의 물리학'을 발견했다. 저자에 따르면, 외로움과 쓸쓸함은 우리 삶에서 오래된 주제이자 물음이다. 외로움은 기다림의 몸에서, 쓸쓸함은 고독의 몸에서 나왔다. "외로움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 너를 바라보는 일이고, 쓸쓸함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다시 말해 외로움은 내 마음이 밖을 향해 있고, 쓸쓸함은 안을 향해 있으며 안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해 나는 지인에게 물었다. 외로움은 기대치가 있는 것이고, 쓸쓸함은 그마저도 없는 것이라 말한다.

3년 만에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는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산소의 곳곳은 사람들로 붐볐다. 작년엔 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이번 추석에는 '어디가 덜 막힐까'를 고민하며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탄 끝에 무사히 외할머니의 산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힘이 들었지만 그곳의 풍경은 정겨웠다. 대가족이 묘지 앞에 모여 앉아 기도 드리는 모습, 예초기를 들고 내려오는 아버지와 낫이 든 가방을 메고 뒤를 따르는 아들의 모습, 노모를 부축하는 딸의 모습… 그런 사람과 풍경들 속에서 오랜 동안 아무도 찾지 않아 풀만 무성히 자란 익명의 묘소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명절이 주는 몇 일간의 휴가를 혼자 보내며 쉬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오갈 데가 없이 명절을 보내는 분들 또한 많을 것 같다. 혼자이기에 느끼는 외로움은 북적대는 이웃들로 인해 어느새 쓸쓸함으로 변한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그림을 딱 한 점 팔 만큼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에 사회성마저 부족해 이렇다할 친구가 없었다. 그는 함께 하기 원했지만 친구들은 그런 그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급기야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고흐는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에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꿈꾸고, 라이벌이자 멘토인 고갱을 초대해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고갱은 두어 달 남짓 머무르다 고흐 곁을 떠나게 된다. 다음 날, 다시 홀로 남겨진 고흐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귓불을 잘라 매춘부 시엔 후르닉에게 주었다. 이런 행위는 홀로 남겨진 슬픔보다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로 여겨진다. 고흐는 경찰에 의해 정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고흐가 즐겨 마신 독주 압생트는 물론, 화학 성분이 강한 유화 물감의 재료라든가 붓을 씻을 때 사용하는 휘발성이 강한 신나는 모두 고흐의 정신 건강에 치명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병원에서 주기적인 발작을 일으키면서 그린 작품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 친구 같은 별들과 함께하기를 꿈꾸기라도 했던 것일까. 별이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듯 고흐의 예술혼은 외롭고 쓸쓸한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꽃 같은 것을. 백석에게 시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임을 우리는 안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맞이하는 풍성한 한가위가 누군가에겐 혼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오랜 세월 유학 생활을 경험한 나로선 외국 노동자들, 유학생들, 취준생들, 독거 노인들, 그리고 신체 활동에 제한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재삼 생각해보는 이번 중추가절이다. 100년 만에 가장 둥근달이라고 떠들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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